'흑인 골리앗'의 등장에 김천실내체육관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미국 출신으로 230㎝의 최장신 씨름 선수인 커티스 존슨(31)은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미국프로농구(NBA)의 하부리그인 아메리카농구협회(ABA)와 중국프로농구(CBA)에서 뛴 적이 있는 존슨은 농구공을 돌리는 묘기를 부리며 24일 경북 김천실내체육관을 찾은 씨름팬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었다.
2011 세계씨름 친선교류전 마지막 경기를 배정 받은 존슨은 성큼성큼 걸어 모래판에 오른 뒤 두 팔을 벌리며 기합을 넣었다. 존슨의 상대는 180㎝의 안태민(현대삼호중공업). 건장한 체격의 안태민도 존슨 옆에 서니 '고목 나무의 매미' 같았다. 뉴저지에 살고 있는 그는 1년 전 미국 한인체육회에서 주최하는 대회를 보고 씨름에 입문했다. 처음으로 출전한 뉴욕장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는 주 2, 3회 씨름을 배워 샅바 잡는 법도 제대로 알고 있었다.
존슨은 손쉽게 샅바를 잡았지만 안태민은 상대의 덩치가 너무 커서 샅바를 제대로 움켜잡지 못했다. 첫째 판 휘슬이 울리자 마자 '골리앗'이 모래판에 그대로 내동댕이 쳐졌다. 존슨은 상대의 앞무릎치기에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팬들은 웅성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기술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신보다 키 큰 상대 넘어뜨릴 수 있는 씨름의 매력에 환호했다. 첫 째판을 져 자존심이 상한 존슨은 둘 째판에서 안태민을 번쩍 들어올려 그대로 내리꽂았다. '퍽' 소리가 날 정도의 힘이 실린 공격. 순간 골리앗의 엄청난 파워에 "와~"라는 환호성이 터졌다. 그러나 휘슬이 울리기 전에 공격을 한 존슨은 '경고'를 받아 멋쩍게 됐다. 셋 째판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존슨이 번쩍번쩍 들어올리자 안태민은 대롱대롱 매달려 방어자세를 취했다. 존슨은 1분간 들배지기를 시도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자신의 기술에 손이 모래에 먼저 닿는 바람에 0-2로 패하고 말았다.
소녀팬들에게 둘러싸인 존슨은 "씨름이 세계 최고의 스포츠"라며 엄지 손가락 치켜 올렸다. 서툰 한국 말로 "씨름 사랑합니다"라고 외친 존슨은 "씨름은 큰 덩치를 이용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덩치로만 하는 게 아니라 더욱 흥미롭다"며 "체력과 기술, 파워 삼박자가 맞아야 하는 종목이라 매력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인터뷰'라는 패션잡지에서 화보를 찍기도 한 그는 경기 전 성경구절을 되새기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리고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시와 낚시를 좋아하기도 한다. 비빔밥과 삼겹살, 김치 등을 좋아하는 존슨은 "앞으로도 계속 연습해서 발전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존슨을 상대한 안태민은 "이렇게 덩치 크고 힘 좋은 선수와 하는 건 처음이다. 다리를 빼니 샅바가 터졌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편 존슨은 이어 열린 2011 천하장사 씨름대축제 예선전에서 27조 1위를 차지해 25일 같은 장소에서 계속되는 32강전에 출전하게 됐다.
김천=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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