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시오 수도회의 염동규(53) 신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컴컴한 지하 묘지로 내려간다. 왜 일까.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성 갈리스도 카타콤베에서 한국어 전담 가이드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관리하는 살레시오 수도회 본부의 요청에 따라 8월부터 시작한 일이다. 5년 전 한국인 수사(修士) 한 명이 6개월간 한국 관광객을 위해 가이드를 한 적이 있지만 신부가 카타콤베의 가이드로 나서기는 처음이다.
염 신부는 “하루에 평균 7~8명의 한국인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며 “처음엔 ‘내가 무덤에 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관광객들이 한국어 가이드인 나를 보고 반가워하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카타콤베의 전체 방문객 중 20%는 개신교나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일반 배낭 여행족들이다.
고대 기독교의 지하묘지인 카타콤베는 그리스어의 코이메테리온에서 유래한 말로 ‘안식처’를 의미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피해 카타콤베에 숨어 예배했다.
로마엔 51개의 카타콤베가 있는데, 이 가운데 아피아 가도에 위치한 성 갈리스도 카타콤베의 규모가 가장 크다. 지하 동굴의 길이만 20㎞에 이른다. 물고기, 닻, 올리브 잎을 문 비둘기 등 기독교를 상징하는 표식이 곳곳에 새겨져 있으며 당시 기독교로 개종하고 순교한 성녀 체칠리아의 석상도 전시돼 있다.
염 신부는 “무덤에 그려진 벽화와 묘비를 보면 초기 기독교인들은 죽은 사람을 보고도 ‘죽은 게 아니라 자는 것’이라고 여겼으며 천국과 영원한 삶을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영생에 대한 믿음으로 모진 박해에도 웃으면서 죽을 수 있었다”며 “기독교인들이 자기 희생을 통해 믿음을 보여줘 로마가 변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로마=연합뉴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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