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바닥을 쓸었는지 한 방향으로 휘어 더 이상 쓸리지 않을 플라스틱 빗자루. 언젠가 한번쯤 꽃 피웠을 화분엔 누렇게 마른 가지만 덩그러니 남았다. 동네 사람들이 수없이 오르내렸을 닳은 계단과 페인트 색마저 바래고 벗겨진 창백한 담벼락도 보인다. 누군가 머물렀던 흔적만 남은 그곳엔 이제 사람 없이 고양이만 살고 있다.
서울 재개발 지역의 골목길 풍경이다. 머잖아 사라질 모습이지만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물렀을 온기를 사진작가 이동준(44)씨가 흑백사진으로 담아냈다. 전시 '서울, 뒷골목'이 27일까지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 3층에서 열린다.
"어느 순간 삶이 깃든 공간이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는 이씨는 "무심히 세워진 도구나 뒤축이 구겨진 신발, 빛 바랜 벽에서 거칠지만 아련한 아름다움마저 느껴졌다"고 골목길 촬영 계기를 말했다. 흑백 사진 속 피사체는 주로 버려진 물건이지만 사진은 마냥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떠나간 주인들이 남긴 삶의 체취 때문일까.
사진평론가 박평종씨는 어두운 사진 속에 보이는 버려진 사물들은 "'대충'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구슬픈 상징이다. 그래도 더 나은 삶을 꿈꿨던 이들의 몸부림이 곳곳에 묻어 있다"며 이번 작업을 "일종의 '칙칙한 리얼리즘'"이라고 축약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사진을 전공한 이씨는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 1세대인 주명덕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턴트와 사진가로 일했고 한때 기업 홍보팀과 신문사에 몸담기도 했다. 1990년대 초부터 그의 관심사는 줄곧 도시의 풍경과 건축이었다. 서울, 경기도에 관한 작업을 사진집과 전시로 여러 차례 선보였다. 1993년 개인전 '태백, 폐광'을 시작으로 이번이 세 번째 개인전이다. 최근 2년여간 준비한 28점을 출품했다. (02)720-5114
이인선 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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