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혹행위 등 발뺌 일쑤… 증거 확보못해 기각땐 안타까움"
“자대 배치 첫날부터 암기사항 못 외운다고 뺨을 때리고 잠도 안 재웠다고 합니다.”
21일 오전 서울 중구 금세기빌딩 9층 인권위 조사국. 정상영(48) 조사총괄팀장이 팀원들에게 군 부대 내 가혹행위에 관한 진정 내용을 설명했다. 현장조사 계획을 짠 정 조사관은 팀원들과 진정인이 근무했던 서울 용산구 국방부로 가서 장장 8시간에 걸쳐 지휘 감독관, 가해대원 등을 면담하고 내무반도 샅샅이 훑었다. “진정 내용 중 사실이 아닌 부분도 일부 있는 것 같네요.” 진정서와 현장 조사 보고서, 국방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를 검토하던 정 조사관이 조용히 읊조렸다.
정 조사관은 조사 경력만 10년이 넘는 인권위 최고 ‘베테랑’ 조사관이다. 경찰 검찰 등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와 군 부대 내 가혹행위가 그의 전문 분야. 지난 4월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과 10월 전의경 부대 내 가혹행위 조사, 지난해 서울 양천경찰서 고문, 해병대 성폭력 사건 등 굵직굵직한 인권침해사건이 모두 그의 손때를 탔다.
정 조사관은 노동운동,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 2000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실종사건을 담당하며 처음 조사업무와 인연을 맺었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하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대학생의 시신을 찾아 강원도 한 댐의 물을 다 빼기도 했다.
2002년 인권위 조사관으로 온 후에도 가장 중요한 건 증거였다. 인권위는 조사 대상의 동의 하에 조사를 할 수 있는 임의 수사 권한만 있고 강제 수사권은 없어 증거만이 인권침해 여부를 가리는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 하지만 군이나 경찰 등 폐쇄적인 공간에서 몇 개월 전에 있었던 인권침해 증거를 찾기란 쉽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양천서 고문사건. 지난해 인권위에는 양천서 소속 경찰이 피의자 등 뒤로 팔에 수갑을 채운 후 팔을 들어올리는 일명 ‘날개 꺾기’ 고문에 대한 진정이 2건 접수됐지만, 증거가 없어 취하됐다. 그러나 동일사건이 2건이나 접수된 점을 이상히 여겨 직권조사를 개시, 30여명이 넘는 피해자를 찾아냈다. 하지만 여전히 진술만 있을 뿐, 증거가 없었다.
압수수색영장을 가져오라는 양천서와 3시간 넘게 대치한 끝에 양천서 사무실 바닥에 떨어져있는 머리카락을 수집했다. 수집한 머리카락 DNA를 대조하기 위해 전국 교도소에 흩어져 있던 30여명의 피해자를 다시 만나러 갔다가 “내 담당 검사가 내가 날개 꺾기를 당하는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를 가지고 있다”는 진술을 들었다. 경찰이 없다고 버티던 CCTV 동영상을 검찰로부터 받아 고문 의혹을 규명했다.
정 조사관은 “극적으로 증거를 확보해 경찰의 고문 관행을 밝혀냈지만, 상당한 신빙성이 있음에도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기각되는 진정도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조사관 등 인권위 조사관들이 모든 진정에 대해 현장을 다니며 끈질기게 조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간 접수되는 진정은 7,000건이 넘지만 현재 조사관은 70여명에 불과하다. 구금시설이나 경찰 등 진정건수가 많은 분야의 조사관들은 늘 1인당 100여건의 진정을 담당하는 실정. 결국 사건이 계속 밀려 진정처리에 1년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인권위 한 조사관은 “조사부터 보고서 작성까지 업무가 너무 많아 조사를 소극적으로 하는 경향이 생길 수 있고, 이는 결국 국민 인권이 그만큼 덜 보호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21일 정 조사관도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 인권위 최일선 상담원들/ "맷값 폭행 등 진실 알려 뿌듯"
억울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며 시너를 들고 오고, 장애인단체 등이 길게는 한 달씩 점거 농성을 벌이기도 하는 곳. 바로 서울 중구 무교동 금세기빌딩 7층 국가인권위원회의 최전선 인권상담센터다.
인권상담센터는 인권 상담을 하거나 진정을 접수하려는 사람이 인권위에서 가장 먼저 찾는 조직이다. 온갖 종류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그 사안이 인권위 조사 대상인지 여부를 가리는 게 이곳 상담원들의 일이다.
그러다 보니 "내 머릿속에 칩이 있어 도청을 당한다"며 머리에 은박지를 쓰고 센터를 찾는 사람, 횡설수설하는 정신병동 환자, 술 취한 민원인도 모두 이들 몫이다.
특히 인권위는 국가기관 등에서 인권침해나 차별을 당하거나 단체ㆍ개인에게 차별 행위를 당한 경우만 조사 대상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사안이 진정으로 접수되지 않으면 난동을 부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담사 최희자(54)씨는 "전체 상담의 절반이상은 인권위 조사 대상이 아니어서 도와줄 방법이 없다"며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붓거나 머리채를 잡는 등 폭행을 하는 민원인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보람된 순간도 많다. 지난해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던 SK 창업주 2세인 최철원씨의'맷값 폭행'은 인권위 출범 때부터 상담사로 일한 양윤정(45)씨 덕분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폭행 피해자인 탱크로리 운전기사 유모(53)씨는 물류회사 M&M으로부터 고용승계를 거부 당해 SK본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다 M&M 최철원 사장으로부터 '한 대에 100만원'이라며 야구방망이로 폭행을 당했다. 폭행을 당한 후에도 이를 알리지 않던 유씨는 2009년 고용 승계 문제로 상담을 한 적이 있던 양씨를 지난해 다시 찾아와 그간의 일을 털어놨다.
하지만 개인 간 폭행은 인권위 조사대상이 아니었다. 양씨는 고민 끝에 3대 사무총장이었던 김칠준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김 변호사가 유씨를 도와주면서 이 일이 세상에 알려졌다. 양씨는 "내 앞에서 계속 눈물을 흘리며 '화물 노동자의 아픔을 알리겠다'는 유씨를 보며 진심이 느껴졌다"며 "도움을 줄 수 있어 정말 뿌듯했다"고 말했다.
인권의 최전선에서 웃고 우는 상담원은 모두 6명. 그러나 고용만 보장될 뿐 임금이나 복지는 계약직 수준인 무기계약직이다. 한 때 14명에 달했던 상담원이 절반 이상 줄었지만 인력 충원은 되지 않고 있다. 역대 위원장들은 상담사의 처우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낀다"고 했지만 달라진 건 없다. 인권위 내부 직원들의 처우 개선과 인권 보호는 인권위의 또 다른 과제다.
남보라기자
■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제언
"국가인권위원회가 독립성을 지키려면 정부의 관용, 인권위 스스로의 사명감, 독립성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 이 세 가지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인권위엔 그 어느 것도 없습니다."
4대 인권위원장(2006년 10월~2009년 7월)을 역임한 안경환 전 위원장(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 말문을 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취임 당시만 해도 그는 '정치적 중립과 국제사회에서의 성장'을 인권위의 큰 방향으로 제시해 인권위 안팎에서 "너무 물렁한 것 아니냐"고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2009년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는 '독한' 퇴임사를 남기고 인권위를 떠났다.
2년 동안 침묵하던 안 전 위원장은 24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인권위 출범 후 7,8년 동안 어렵게 쌓아왔던 것들이 현 정부 들어 한꺼번에 다 무너졌다"고 개탄했다. "인권위를 일개 기관쯤으로 여기는 정부, 독립성을 지킬 의지가 없는 위원장, 인권위 상황에 무관심한 국민 모두의 잘못이 더해져 인권위의 독립성이 무너졌다"고도 했다.
그는 "인권위도 국가기관인 이상 정권이 바뀌고 위원장이 바뀌면 그에 맞춰 속도를 조절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면서도 "사회가 진보하면 인권도 결국 진보한다는 시대흐름을 역행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 전 위원장은 특히 지난 7월 인권위의 1인 시위 직원 징계 조치를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출범 당시 인권위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일꾼들이 모였고 서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직원 징계는 잠깐 머물다 가는 정무직(위원장)이 평생 인권위에 남아있을 직원들을 탄압하고 분열시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전 위원장은 또 "인권위가 다시 독립성을 찾아 조직을 안정 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외로움'을 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 내에서 독립성을 지키고 국민 인권 보호의 최후 보루가 되기 위한 대가는 '고립'이라는 것. 그는 "외로운 길에 대한 확고한 신념, 그것이 인권위를 지탱하는 생명수"라고 강조했다.
남보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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