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020년을 목표로 한 유럽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 강행 방침을 23일(현지시간) 재확인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유럽 MD 무력화 조치를 공개 경고한 지 하루 뒤 나온 반응이다. 시리아, 이란 문제를 비롯해 최근 국제 현안에서 미국과 대립하며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러시아가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미국의 유럽 MD가 러시아를 겨냥하고 있다며 미사일 배치 계획을 수정하지 않으면 국경에 MD기지를 목표로 하는 전술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이날 위협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업적 중 하나인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서 탈퇴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그러나 미국은 러시아의 위협을 일축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이 경고한 러시아와 달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과, 계급이 대령인 국방부 대변인이 나섰다.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은 “유럽 MD 체제는 러시아가 아니라 이란의 탄도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유럽과 동맹국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짧게 반박했다. 토미 비에터 NSC 대변인은 “미국이 러시아와 협력을 계속 추진하겠지만, 러시아는 유럽 MD 체제가 러시아의 전략적 억제를 위협하지 않으며 또 할 수도 없다는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충고까지 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도 “러시아의 위협에 매우 실망했다”면서 “(이는) 과거를 연상시키는 것이며 NATO와 러시아의 전략적 관계와도 어긋난다”고 비난했다.
미국과 NATO의 이 같은 반응은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발언을 국내 정치용으로 보는 것과 관련이 있다. 미국의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러시아 지도자들이 과거에도 유사한 위협을 했다”면서 “최근의 위협은 내달 4일 총선을 앞두고 국내 유권자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미 미국과 NATO 때리기로 성과를 거둔 전례가 있다. 미국은 2009년 폴란드와 체코 대신 이란과 가까운 루마니아와 터키에 각각 요격미사일과 레이더 기지를 설치키로 계획을 수정했는데 이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는 칼리닌그라드에 이스칸데르 전략미사일을 배치, 폴란드와 체코의 미사일 방어기지를 무력화하겠다고 경고했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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