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초유의 국회 본회의장 최루탄 사태를 계기로 국회가 '민의의 전당'을 스스로 '무법의 전당'으로 추락시켰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 국회는 더 이상 설 땅이 없게 됐다.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와 정치권 관계자들은 난장판 국회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국회 선진화 관련 법안의 조속한 처리와 함께 의원들의 인식 제고를 주문했다. 의원들이 '다수결 원칙 및 소수 의견 존중' 등의 의회주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노영민 의원은 "직권상정 제한 등 선진화법만 빨리 처리했어도 이번 폭력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며 "여야의 상시적 토론이 가능하도록 선진화법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제도 도입과 안건 신속처리제 도입을 골자로 한 국회 선진화법은 여야 합의에도 불구 5개월째 표류 중이다. 민주당 김성곤 의원도 "18대 국회 내에 몸싸움 방지 법안 등이 처리돼야 한다"고 주문했고, 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여야 의원들이 함께 필리버스터 제도 도입 등을 위해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첨예한 이슈에서는 당론 투표 대신 헌법과 국회법에 따라 의원 개인별 소신 투표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나라당 원희룡 최고위원은 "정치개혁을 위해서라도 의원 개인의 의견과 다양성을 부정하는 강제 당론은 원칙적으로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바로세우기 모임' 소속 한나라당 현기환 의원은 "당론을 빌미로 투쟁의 선봉에 서면 공천을 보장하는 관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이번 사태를 '여야의 정치 죽이기'로 규정한 뒤 "국회 상임위에서 합의 처리 데드라인을 정해 해당 기간이 지나도 합의되지 않으면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가 가능하도록 룰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의원 감싸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국회 윤리위를 국회의장 직속기구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폭력 의원에 대한 실질적 징계 필요성을 거론했다.
의원들의 인식 전환이 국회 선진화를 위한 선결 과제라는 데는 정치권의 인식도 일치했다. 한나라당 김영우 의원은 "군사정권 시절엔 의장석을 점거하는 것이 절대선이었는지 몰라도 이젠 나만 옳다는 '정의 독점주의'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기환 의원은 "국민은 조그만 일로도 처벌되는데 국회에서 폭력을 휘둘러도 배지를 달고 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대책은 충분히 나와 있는 만큼 국회 스스로 악순환을 끊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자발적 노력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권자가 선거를 통해 폭력을 행사한 의원을 심판해야 국회가 바로 설 수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국회 바로세우기 모임 소속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은 "협상을 통해 줄 건 주고 양보할 건 양보하되 일단 표결이 이뤄지면 승복한 뒤 다음 선거를 통해 국민의 판단을 구하면 된다"고 말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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