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부터 심상치 않다. 네온사인으로 꾸며진 고풍스러운 극장 간판이 손님을 맞는다. 일층 로비에 들어서니 팝콘 냄새 대신 구수한 빵 내음과 커피 향이 풍겼다. 고급스러운 실내 장식뿐 아니라 극장 상영시설도 남달랐다. 넉넉하고 편안한 좌석은 기본. 다른 상영관에선 만날 수 없는 첨단 음향 장비 등이 갖춰져 있었다. 영화를 골라보는 것처럼 상영관을 고르는 재미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당연히 관람료도 평일 8,000원, 주말 9,000원인 보통 관람료보다 높다.
지난달 문을 연 서울 신사동의 멀티플렉스 CGV청담씨네시티는 국내 영화관의 진화를 상징한다. 가장 싸게 즐길 수 있는 여가 활동으로 여겨지던 영화 보기도 꽤 호사스런 취미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관 시설에 따라 영화관람료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멀티플렉스 체인의 의도도 명확히 드러난다.
영화관 고급화의 본격적인 시동
CGV청담씨네시티는 붕어빵 같은 여느 멀티플렉스와 다르다. 7개 상영관마다 특색을 갖추고, 각기 다른 가격으로 관객을 받아들인다. 7층에 위치한 상영관 '비츠바이 닥터드레'가 저렴한 편으로, 1인당 1만1,000원(이하 주말 2D영화 기준)을 내야 한다. 수영 국가대표 선수 박태환이 사용해 화제가 됐던 43만9,000원짜리 닥터드레 헤드폰이 좌석마다 비치돼 있다. 스크린 몰입에 오히려 방해가 될 정도로 빼어난 음향을 호객거리로 내세우고 있다.
놀이공원 시설처럼 영화의 장면에 따라 좌석이 출렁이거나 물 등을 뿌리는 4DX 기능과, 영화 속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는 음향시설인 3D사운드를 갖춘 상영관 '4DX 3D사운드'는 1만9,000원. 연인들을 위해 가죽 소파 형식으로 꾸민 '스윗박스 프리미엄'석은 2만5,000원이다. 보통 영화관람료의 3배 가까운 금액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약과다. 재력을 갖춘 사람들이나 기업 단위 고객을 위해 마련된 '더 프라이빗 시네마'(기본 좌석 24개)는 적어도 400만원을 주고 통째로 빌려야 영화를 볼 수 있다. 주방과 커피머신, 응접 시설 등을 갖추고 있어 호텔 파티장을 떠올리게 한다.
사운드 등 강화 가격 인상 효과 노려
극장가는 오래 전부터 영화관람료 인상을 고대해 왔다. 2009년 1,000원을 올리는 데 겨우 성공하긴 했지만 여전히 국내 관람료가 싼 편이라는 게 충무로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다른 분야보다 영화관람료 인상에 대한 대중의 저항감이 센 편이라 영화인들은 인상을 입에 올리길 주저한다.
돌파구는 상영 방식과 상영관 시설의 차별화다. '아바타'가 3D영화 붐을 일으키자 극장들은 가격 인상 효과가 있는 3D상영관 확충에 열을 올렸다. 시각을 압도하는 대형 스크린을 지닌 아이맥스관이 조금씩 늘어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문제는 3D와 아이맥스관에서 즐길 만한 영화가 아직 많지 않다는 것이다.
우회로는 상영관 시설의 고급화다. 고급 음향시설을 갖춘 THX관과 스타리움관의 등장은 이런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CGV 관계자는 "예전의 일반적인 상영 방식에 따른 극장산업은 한계에 다다랐다. CGV청담씨네시티는 상영관 차별화의 본격적인 시작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관객들도 대체로 호의적이다. 이곳을 찾은 관객들은 "가격이 높긴 하지만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간 적자 행진을 이어온 고급 상영관들이 최근 들어 선전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레스토랑 기능과 영화 관람을 합친 CGV의 '씨네드쉐프'는 꾸준히 매출이 늘더니 올해 흑자로 전환했다. 한 영화인은 "영화라는 콘텐츠로 승부하는 게 일단 중요하지만 극장가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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