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하나가 700만원?' 희귀 음반 수집이 취미인 회사원 최씨(37)는 눈을 의심했다. 최근 37년 만에 지각 발매된 비치 보이스의 앨범 'Smile' 가격표에 무려 5,999달러 99센트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앨범은 20달러 내외의 '기본형' 음반으로 구입할 수도 있지만 구성에 따라 40, 140, 700달러 등 다양하게 판매된다. 전세계적으로 단 10개 세트만 제작된 최고가 패키지에는 CD, LP, 7인치 싱글 등 총 9장의 음반에 책자, 특별 맞춤으로 제작된 서핑보드가 포함돼 있다. 최씨는 고민 끝에 국내에서 구매가 가능한 16만원짜리 세트를 선택했다.
불황에 허덕이는 음반업계에 럭셔리 마케팅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음악산업의 축소와 디지털 음원 매출 증가로 인해 궁지에 몰린 음반업계의 자구책인 셈이다. 최근 출시된 고가의 음반은 대부분 '명반'으로 일컬어지는 재발매 앨범들이다. 이 같은 고가의 재발매 앨범들은 기존 음원 외에도 다양한 부록들을 수록해 경제력을 갖춘 열혈 팬들의 소유 욕구를 자극한다.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1975년 걸작 'Wish You Were Here'는 각 2장의 CD와 DVD, 1장의 블루레이 디스크를 담은 박스세트를 내놓았다. 또 아일랜드의 국가대표 그룹 U2는 6장의 CD, 4장의 DVD를 모은 1991년작 'Achtung Baby'의 박스세트를 발매했다. '얼터너티브 록의 전설' 너바나의 대표작 'Nevermind'는 20주년을 맞아 4장의 CD와 한 장의 DVD가 담긴 세트, 4장짜리 LP 박스세트가 함께 출시됐다. 모두 10만원이 훌쩍 넘는 고가의 음반들로 국내에는 300개 안팎의 세트가 수입됐다.
고가 패키지 앨범들의 타깃 고객은 구매력이 높은 30대 이상의 남성층.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을 수입한 워너뮤직코리아의 김재경 차장은 "고가의 박스세트를 구매하는 소비자는 대부분 30, 40대 남성들로 이들은 CD를 구매하며 음악을 즐긴 마지막 세대라고 할 수 있다"며 "절대적인 판매량이 많지는 않지만 단가가 높기 때문에 매출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다"고 설명했다.
불법 음원 유통이 만연해 있는데다 명반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은 국내 시장에서는 아직 이 같은 마케팅이 낯설다. 그나마 유사한 예는 최근 재발매된 희자매의 '디스코 걸스' 정도다. 음반사 비트볼뮤직은 인순이가 데뷔 초 몸담았던 희자매가 발표한 5장의 앨범과 리믹스 음원을 3장의 CD에 모으고 40쪽 책자와 포스터 등을 수록해 비교적 고가인 6만원대에 내놓았다. 비트볼뮤직의 이봉수 대표는 "오래된 가요 앨범들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싶어 고급스럽게 만들려고 노력했다"면서 "단순히 수익보다는 저변 확대를 위해 이 같은 시도가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