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평준화 정책 이후 사학들은 끊임없이 자율성을 주장해 왔다. 이에 따라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2년 강원 횡성 민족사관고로 대표되는 5개의 사립고가 자립형으로 지정되어 첫선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현 정부 들어와 선정된 51개의 자율형 사립고 역시 대부분 자립형 사립고 운영정신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자율형 사립고들은 학생선발에 있어서만은 완전한 자율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자율형 사립고에 대한 입시과열과 이로 인한 사교육 증가를 우려해 이들 학교의 학생선발 자율권만은 일부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평준화지역에서의 자율형 사립고는 중학교 내신성적 상위 50% 이내로 지원자격을 제한한 뒤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추첨에 의해 학생을 선발할 수 있게 하여 일반고보다는 비교적 우수한 학생(실제 합격생들 대부분은 상위 30% 이내 학생들임)들을 선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자유롭게 학생을 선발하기를 원하는 사학들은 여전히 불만이 많다.
그 동안 사학에 학생선발 자율권을 자유롭게 부여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았다. 사립고에 대한 학생선발 자율권 부여는 단순히 사학의 자율권 보장이라는 차원에서만 논의되기 어려운 배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율형 사립고에게 학생선발 자율권을 완전 개방하게 되면 결국 이들 학교들은 성적 우수 학생들 위주로 선발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학입시 경쟁에서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되어 여타의 고교들은 대입경쟁에서 불공정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다시 자율형 사립고의 입학 선호도를 더욱 높여 중학생들의 자율형 사립고에 대한 입시가 과열되어 결국 사교육이 더욱 성행하게 될 것이다.
자율형 사립고들이 당초 선정될 때에는 모두 한결같이 자신들의 건학이념에 맞게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성교육을 시행하고 나아가 전인적인 인간 육성에 힘쓰겠다고 했지만, 실제 학교를 운영하는 모습을 보면 대부분 대입경쟁에 유리한 교육만을 위주로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자율형 사립고들이 과연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학벌위주의 사회구조를 놓고 보면 이러한 입시위주의 교육을 시도하는 자율형 사립고들의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할 사람도 역시 많지 않다.
결국 자율형 사립고의 완전한 학생선발 자율권 부여는 대입경쟁상에서의 공정성을 해치고 나아가 중학생들의 사교육을 과도하게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된다. 자유롭게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자율권을 자율형 사립고에게만 부여하는 것은 공정한 교육경쟁이라고 보기 어렵다. 만일 진정 이들 학교에게 학생선발 자율권을 완벽히 부여하는 것이 옳다면 모든 공립고에도 그러한 자율권을 공정하게 부여하여야만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의 고등학교는 평준화정책으로 묶어 놓고 자율형 사립고에게만 특별히 학생선발 자율권을 현재보다 더욱 자유롭게 부여하는 것이 과연 교육적으로 정의로운가에 대해 보다 심각히 고민해 보아야 한다.
현재의 자율형 사립고 학생선발방식에 불만을 갖고 보다 더 자유롭게 학생선발 자율권을 부여하자는 주장은 차라리 고교 평준화를 깨고 고교입시를 전면 부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보다 더 정의롭지 못한 것 같다.
김흥주 한국교육개발원 기획처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