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그리 크진 않았다. 충무로에선 잘해야 300만명 아니겠냐는 예측이 나왔다. 그럴 만도 했다. 비수기 중에 비수기인 10월 말 개봉했고, 자극적인 내용도 아니다. 더군다나 앞서 극장가에 선보인 '도가니'가 의외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개봉을 1주일 가량 미뤘다. 제 아무리 좋은 영화라 해도 큰 흥행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완득이'는 10월27일 개봉한 뒤 5주 연속 주말 흥행 1위에 올랐다. 21일까지 '완득이'를 만난 관객은 431만1,101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 10월 개봉한 역대 영화 중 처음으로 400만명 고지를 넘어섰다. 삶의 동반자로서의 사제 관계를 잔잔한 감동과 웃음으로 전하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완득이'의 상업적 성공으로 '슬리퍼 히트'(Sleeper Hit)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올해 충무로의 흥행 키워드임이 다시 확인됐다. '슬리퍼 히트'는 입소문에 힘입어 개봉 전 예상과 달리 흥행한 영화를 말한다.
올해 초부터 극장가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설 연휴 시장에서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479만5,460명)이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과 강우석 감독의 '글로브'를 누르면서 반란의 시작을 알렸다. 5월 개봉한 '써니'가 737만4,920명을 모으며 '조선명탐정'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써니'는 투자배급사에서도 300만명을 목표로 삼은 영화였다.
블록버스터들이 다툰 여름 시장에서도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개봉 전부터 기대감을 잔뜩 부풀린 '7광구'와 '퀵', '고지전'을 제치고 흥행 왕좌에 오른 영화는 인지도나 덩치 면에서 크게 떨어졌던 '최종병기 활'(745만9,974명)이었다.
극장가에서 '잘해야 60만명'이라는 저평가를 받았던 '마당을 나온 암탉'도 한국 애니메이션 역대 최고인 236만3,154명의 관객을 모았고, 스릴러 '블라인드'(236만3,154명)도 기대를 넘는 성과를 냈다. '도가니'(467만5,460명)도 사회적 이슈화에 힘입어 예상 밖의 흥행을 일궜다.
김윤석 유아인 두 배우와 인기 청소년 소설 원작이라는 것 외엔 딱히 기대할 것이 없던 '완득이'의 흥행 질주는 '슬리퍼 히트'의 결정판이다. 200만명만 들어도 감사할 10월 비수기에 일명 '개싸라기'(개봉 뒤 갈수록 관객이 늘어나는 현상을 일컫는 충무로 속어) 흥행을 보였다.
슬리퍼 히트작이 잇따라 등장한 데는 대중 사이에서 일종의 입소문 확성기 역할을 하는 트위터 등 SNS가 큰 힘이 됐다. 반면 물량 공세나 이른바 '낚시 마케팅'을 내세운 영화들은 철저히 외면 받고 있다. 여름 블록버스터로선 치욕적인 224만4,326명 관람에 그친 '7광구'의 몰락이 대표적이다. '완득이'의 홍보마케팅을 담당한 퍼스트룩의 강효미 실장은 "예전에는 개봉 첫 주말은 지나야 입소문이 돌았는데 요즘은 개봉일 오후쯤이면 해당 영화에 대한 여론이 형성된다"며 "과장된 마케팅을 통한 바람몰이는 이젠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배급 구조에도 변화가 생길 조짐이다. 전국 극장에서 대규모 스크린을 확보해 개봉했다가 흥행에 실패하면 종적을 감추는 '와이드 릴리스' 방식에 작은 균열이 생기고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제작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개봉 1~2주일이 지나면 영화의 운명이 결정되곤 했는데 SNS의 등장으로 오래 상영되는 영화들이 늘고 있다"며 "규모가 아닌 영화 완성도가 훨씬 더 중요해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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