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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선의(善意)에 대한 아량

입력
2011.11.2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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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기부에 대한 일각의 묘한 반응을 지켜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 기부조차도 넉넉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강퍅해진 우리 사회의 현실 때문일 것이다.

'원죄'는 정치에 발을 디딘 안 원장에게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체의 밝은 면을 애써 외면한 채 기부를 정치 행보를 위한 포석으로 애써 재단하려는 건 좀스러워 보인다. 심지어 안철수연구소 임원들이 주가 고점에 맞춰 보유지분을 판 걸 안 원장의 기부에 타산적 음모라도 있는 것처럼 떠벌리는 측도 있었다. 좋은 일 하고도 이런 식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면 어떤 부자가 기부에 나서겠는가.

인간의 행위에서 완전한 이타적 동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심지어 아이에게 젖을 주고 보듬는 어머니의 행위에도 심연(深淵)엔 어떤 식으로든 자기충족적 메커니즘이 작동할 것이다.

기부를 멋대로 재단하는 현실

기부 역시 마찬가지다. 안 교수의 경우 정치적 동기가 작동했을 여지는 없지 않다. 어떤 재벌 총수는 범죄에 대한 면죄부를 받기 위해, 쪽방에 살면서도 평생 한 푼 두 푼 모은 전 재산을 대학에 기탁한 어느 할머니는 생애의 보람을 구하기 위해 기부를 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 동기를 헤집고 까발리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어쨌든 기부에 담긴 선의(善意)에 감사하고 격려함으로써 그런 선의가 사회적으로 더욱 확장되도록 배려하는 게 기부에 대한 예의이고 아량이다.

기부는 이제 단순한 선행을 넘어 승자독식(勝者獨食)과 '1대 99 사회'로 치닫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약점을 보완할 사회적 기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의 기부 캠페인에 대한 각국 부자들의 호응이나, 최근 '부자증세'를 지지하고 나선 미국과 영국 부자들의 움직임은 부(富)의 자발적 나눔이 '가진 자'들의 사회적 책무가 되야 한다는 진보적 생각을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흐름을 타는 건지는 모르나 국내에서도 기부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국내 기부 총액은 2001년 4조6,700억 원이었던 게 지난해엔 10조원을 돌파했다. 10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특히 10여 년 전만 해도 전체 기부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밑돌았던 개인 기부액이 최근엔 65%에 육박할 정도로 크게 늘어난 점도 기부문화의 확산 전망을 밝게 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기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정서나 제도는 여전히 미흡하다. 당장 안 원장만 해도 연구소 보유지분 18.55%를 기부하기로 한 만큼 경우에 따라 5% 초과분인 13.55%에 대한 양도세 약 400억원의 처리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2003년 당시 부산대에 305억원이라는 국내 최대의 개인기부 약정을 맺은 뒤 지금까지 기부금 용처를 둘러싸고 학교 측과 소송에 휘말려 있는 송금조 (주)태양 회장의 경우도 어쨌든 기탁자의 선의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감사와 예우 담은 통큰 제도를

당정은 최근 기부연금제도 도입을 골자로 하는 '나눔문화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0.85% 규모인 기부액을 2%까지 늘린다는 장기 목표도 내놨다. 민간의 자발적 기부가 정부의 재정 한계를 보완할 복지사회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방안의 내용엔 '김장훈법'처럼 기부금 중 일정액을 노후에 연금식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한 기부연금제 외에, 기부에 대한 세제 지원과 기부자에 대한 의료비 및 장례비 지원책이 포함됐다.

하지만 '좋은 일 하면 최소 생활은 보장하겠다'는 식인 이번 방안 역시 기부에 대한 흔쾌한 예우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여도에 따라 훈장도 주고, 국립묘지도 개방하며, 자녀들의 기부금 입학까지도 허용해줄 수 있는 통 큰 아량을 모색해 볼 때 아닌가 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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