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무언가 분출할 것 같은 나라라는 인상을 받아 런던, 뉴욕 공연과는 또 다른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한국 관객이 제 작품을 어떻게 봐 줄지 흥분되고 기대됩니다."
일본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76)씨가 신작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로 첫 내한 공연을 갖는다. 배우로 첫 발을 디딘 그는 1969년 이후 135편의 연극을 연출했다. 특히 셰익스피어 희곡, 그리스 비극 등 고전을 원작으로 한 대극장 연극으로 명성을 쌓았는데, '왕녀 메디아' '니나가와 맥베스' 등은 그리스, 영국, 미국 등지에서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외국 작품에 문턱이 높은 영국 로열 내셔널 시어터 무대에 서양 고전이 아닌 창작극을 올려 일본 연극의 저력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니나가와씨는 24~27일 LG아트센터 공연을 앞두고 22일 열린 간담회에서 "공연을 본 한국 관객의 감상을 통해 내 작품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계기로도 삼고 싶다"고 말했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그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도쿄 인근 사이타마 예술극장에서 지난달 선보인 신작으로 그의 24번째 셰익스피어 연극이다. "유럽 연극을 가장 이상적인 연극으로 배운 세대로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아시아의 정체성을 담아 관객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는 그는 전작들이 그랬듯 이번 작품을 볼거리가 풍성한 연극으로 꾸몄다. 로마와 이집트의 운명을 짊어진 연인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사랑과 파국을 스핑크스 등 상징적인 조형물과 30여명에 달하는 앙상블의 움직임 속에 녹여냈다. "영어 문화권의 희곡을 관객이 쉽게 이해하게 하려면 무대 미술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그의 연출관이 반영됐다.
캐스팅에서도 "유럽 연기나 발성을 흉내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보여줄 수 있어야 좋은 배우"라는 확고한 원칙이 적용됐다. 클레오파트라 역을 일본의 전통 여성 가극단 다카라즈카에서 활동해 온 재일동포 3세 아란 케이에게 맡겼다. 그는 "재일동포로서 인간적으로나 연기 활동 면에서 차별과 싸워 온 아란 케이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캐스팅했다"며 "아름다우면서도 기백과 패기가 있는 클레오파트라와도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평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흥행 연출가답게 그는 "막 올린 뒤 3분 안에 관객을 연극 속으로 몰입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관객이 느끼는 무거운 삶의 무게와 일상을 인식하고 그들이 최대한 빨리 현실에서 벗어나 연극에 빠져들게 하는 게 연출가의 일입니다. 그래서 작품을 만들 때는 관객 입장에서 생각하기 위해 공연장 주변과 로비 등을 미리 둘러보죠."
1970년대 초반까지 실험성과 사회성 짙은 연극을 주로 했던 그가 대극장 상업 연극으로 잇따라 흥행에 성공한 뒤 그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거장이라기보다는 싸우는 노인"이라고 말한다. "관객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살아가는 데 필요한 희망이 될 만한 요소를 가져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극을 만듭니다. 이를 위해 매번 다른 스타일의 다양한 연극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어요."
니나가와씨는 "나와 배우들이 세계와 아시아의 문제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 한국 관객을 통해 확인하고 싶다"며 "기회가 닿는 대로 한국에서 더 많이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공연은 일본어로 진행되며 한글 자막이 제공된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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