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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계몽된 이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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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계몽된 이기심'

입력
2011.11.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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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의 빛이 바래고, 대표적 사상가들의 책에는 먼지가 수북했다. 딱히 한마디로 말하는 무모함을 감수한다면, 계몽사상의 핵심은 역시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이자 그 담지자인 다른 인간의 가치에 대한 믿음이다. 신의 세상을 인간 중심으로 재해석해도 같은 원리로 파악되고, 세계의 재발견은 인간에게 자율과 자유를 주었다. 그 위에서 세계는 합리적 체계로서 재구축됐고, 자유와 평등이 비로소 현실적 가치를 띠었다. 자기 삶의 주체가 된 인간은 그 이전의 종속적 존재보다 커진 자유의 무게만큼 더 큰 책임을 느껴 마땅했다.

■ 계몽이 되살아 나고 있다. 올해 초 미국의 사회복지재단인 빌 앤 멀린다 재단의 연례회의에서 공개된 빌 게이츠 서한은 소아마비 근절 지원의 필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그것을 도덕적 명령으로 여기든, 부유한 세계의 '계몽된 이기심'(Enlightened self-interest)이라 여기든 건강한 번영의 미래로 이끄는 조건을 확보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목표라고 믿는다." 천연두에 이어 소멸이 임박한 소아마비 근절 지원을 호소하는 자리였다. 질병의 위협으로 경쟁의 출발선에도 설 수 없는 불평등은 막자는 외침이었다.

■ 자본주의 경제의 이론적 토대를 만든 아담 스미스도 계몽된 이기심에 믿음을 두었다. 개개인의 이기적 욕망 충족 노력이 결과적으로 전체 국민경제의 조화와 발전을 가져온다고 볼 때 빠뜨려서 안 될 대전제가 도덕 감정이었다. 이 도덕 감정을 일깨우는 것, 인간 이성과 그에 따른 합리적 공동체 의식을 일깨우는 것이 바로 계몽이다. 가장 건조한 형태의 이성(Ration)이 계산 능력, 즉 이해 타산이라는 점에서 '계몽된 이기심'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 공동체를 위한 양보가 자신에게도 이익이라는 생각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 미 의회에 "우리 세금을 올리라"고 요구해 화제가 된 '재정 강화를 바라는 애국적 백만장자 모임'의 대변인 격인 찰리 핑크가 '계몽된 이기심'을 다시 언급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세금 폭탄'을 피하기 어렵다는 합리적 판단을, 최대한의 이익을 챙기려는 이기심과 조정한 결과가 '부자 증세'요구라는 고백이다. 당사자의 말이어서 의심하기 어렵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합리적이다. 개혁이나 변화가 변혁이나 혁명의 가장 큰 걸림돌임을 잊고 살아온 한국 부유층에게 소탐대실의 어리석음을 일깨울 만하다. 아예 눈을 감아 어둠을 인식조차 할 수 없다면 몰라도.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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