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허각 신드롬을 낳았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의 시즌3 무대가 또 한편의 감동 드라마를 쓰며 최근 막을 내렸다. 노래와 춤, 퍼포먼스 실력만으로도 빛났던 우승팀 울랄라세션은 경연 도중 암 투병 사실이 알려진 리더 임윤택의 의연한 모습과 음악에의 열정으로 거친 무명의 세월을 헤쳐온 멤버들의 사연이 더해지며 뭉클한 감동을 줬다.
슈퍼스타K는 매주 온라인 사전투표(5%), 심사위원 점수(35%), 생방송 중 문자투표(60%)를 합산해 순위를 매겼다. 사실상 시청자투표가 당락을 결정짓는 구조다. 다만 제작진은 한 사람이 여러 팀을 응원하는 다중투표는 허용하되, 한 팀에 중복해서 투표할 수는 없게 했다. 실력보다 인기에 좌우될 수 있는 구조에서 나름대로 공정성을 기하는 최소한의 장치를 둔 셈이다. 그런데도 일부의 명의도용 중복투표로 소소한 논란이 일었는데, 아예 중복투표를 허용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가수다'의 김건모 재도전 논란 못지않은 공정성 시비가 들끓었을 테고, 허각 신드롬도 울랄라세션의 감동 드라마도 빛이 바랬을 것이다.
울랄라세션이 감격의 눈물을 쏟던 그날 새벽 제주도는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됐다는 소식에 환호했다. 우리 스스로 '세계 ○대 ○○강국'이란 말을 무시로 입에 올리는 마당에, 전 세계인(?)이 참여한 투표 결과 톱7에 들었으니 감격할 만도 했다.
그런데 이 낭보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정체불명 단체의 돈벌이 이벤트에 홀려 정부까지 나서 수백억원의 헛돈을 썼다는 악평까지 나왔다. 이런 지적을 하는 이들을, 이 정부가 하는 짓이 죄다 못마땅해 잔칫집에까지 재를 뿌리려는 심보로 치부할 수 있을까.
뉴세븐원더스(New7Wonders)라는 단체의 모호한 실체나 선정 효과를 둘러싼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선정 방법 자체가 문제투성이다. 최종 후보지 28곳을 놓고 2년여 진행된 투표에선 전화를 이용한 무제한 중복투표가 허용됐다. 국제전화료를 지불할 의사와 여력만 있다면 한 사람이 수십만, 수천만 번의 투표도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더구나 KT가 나서 콜당 1,000원을 넘는 국제전화료를 180원으로 낮춰 부담을 덜어줬고, 제주MBC는 연일 뉴스에서 '○○상회 몇 천 표 기탁'식으로 소개하며 제주사랑을 표로 보여달라고 독려했다.
절차야 어쨌든 "됐으니 좋은 거 아니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다만 '세계 7대 경관' 선정이 "세계가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인정한 결과"가 아니며, "국격을 높인 쾌거"는 더더욱 아니라는 것만은 인정하자. 일개 예능 프로그램에조차 엄격한 공정성을 요구하면서, 사실상 돈과 맞바꾼 '세계 7대' 타이틀에 마냥 환호하는 것은 낯뜨거운 일이다.
이번 기회에 '세계 ○대 강국'이니, '세계대회 아시아 최초 유치'니 하는 것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법석을 떠는 일도 되돌아봤으면 한다. 일상사 연구의 권위자인 알프 뤼트케 독일 에르푸르트대학 명예교수는 지난달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자동차경주대회 F1이나 G20 정상회담, 올림픽 같은 국제행사 유치에 유난히 집착하는 것에 대해 "제1세계로부터 인정 받아야 한다는 불안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상의 철학자'로 불리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지적했듯이, 우리 안의 불안을 극복하려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아닌 스스로의 판단으로 자기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제주도는 '세계 7대 경관'같은 타이틀이 아니고도, 그대로 아름답고 소중한 우리의 자산이다.
이희정 문화부장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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