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려앉을 곳은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제 3번 G장조'의 제 2악장. 일명 'G선상의 아리아'라 통칭되는 선율이다. 물론 그 옆으로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 1번'(비의 노래),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가장조' 등이 있다. 각각 30여분 동안의 연주시간을 거장적 기교의 전시장으로 만들 곡들이다.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정경화 바이올린 독주회' 기자 간담회는 단순히 콘서트를 홍보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2005년 손가락 부상으로 활을 놓고 부심의 세월을 거친 뒤 지난 8월 대관령국제음악제 무대에서의 당당한 복귀까지, 회심의 무대 속에 내장된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실타래를 풀어헤치는 자리였다. 2007년 작고한 언니 명소, 데카와 EMI 등 40여 장을 헤아리는 음반 작업에서 그의 짝패였던 프로듀서 크리스토퍼 레이번, 지난 5월 그들의 뒤를 따른 모친 이원숙씨 등 최근 자신을 떠난 사람들을 차분히 호명하며 정경화(63ㆍ줄리어드 음악원 교수)씨는 자신의 입지점을 선명히 했다.
"다시 연주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는 말로 그는 절망감을 대신했고, "가까운 사람들이 5년 동안 내 곁을 떠났다"며 비통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번 리사이틀 무대를 두고 "정말 꿈만 같다"고 말한 이유다. 그는 "부상 이후 욕심을 완전히 끊었다"며 "무대를 뜬 동안 연주자 친구들이 쉴 수 있게 됐다며 오히려 나를 부러워하더라"고 전했다.
정씨는 자신이 인생 제3막의 출발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지금 나의 바이올린이 내는 음색은 몸과 영혼이 완전히 결합한 상태의 것"이라며 "몸이 받쳐준다면 가능한 한 연주와 녹음, 교수 생활을 하고 싶다"고 희망을 내비쳤다. 그는 "손 때문에 연주 못하게 되니 모든 걸 받아 들일 수 있는 평정의 마음이 찾아 왔다"며 "손 치료를 받으며 연주했던 대관령음악제 무대가 나눔에의 믿음을 확인시켜 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간담회에서 "지금까지 이름 옆에 붙어 있던 'legend'라는 말은 생각하면 산 사람에게는 붙어서는 안 될, 소름 끼치는 말"이라며 "이제사 (좋은)음악을 만들 수 있구나 생각하니 흐뭇하다"고 말했다. "느닷없이 찾아온 손 부상 이후 주위를 둘러보니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다"며 작고한 어머니에 대한 추억도 빠트리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 덕에 나는 굉장히 긍정적"이라며 "줄리어드 음악원 교수로 10년을 열심히 가르친 것이나, 작년에 다시 연주를 시작한 것 모두가 후손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종 미소 띤 얼굴로 간담회를 진행한 그는 "좋은 연주가 될 것이니 기대하라"며 "가장 하고픈 게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인데 내년 봄부터 (바흐를)본격적으로 들려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12월 26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이번 연주회는 국내에서는 9년만에 선보이는 독주회다. 피아노 반주는 케빈 커너가 맡는다. 앞서 12월 13일에는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정명화, 정명훈 등 형제와 트리오로 어머니를 추모하는 비공개 콘서트 '우리들의 어머니를 위하여'도 연다.(02)518-7343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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