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자국 출신의 종합격투기(UFC) 선수 표도르 예밀리야넨코가 지켜보는 앞에서 2만2,000여명 관중으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현지 언론은 푸틴이 공개 석상에서 처음으로 야유를 받은 것은 그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이 드러난 때문이라고 전했다.
푸틴 총리는 20일 모스크바 올림피스키 경기장에서 열린 예밀리야넨코와 미국의 제프 몬슨의 메인 경기를 지켜본 뒤 예밀리야넨코가 3회 판정승으로 승리하자 예정에 없이 링 위에 올랐다. 러시아 출신의 예밀리야넨코는 UFC 헤비급 체급에서 ‘격투기의 황제’로 추앙받는 인물. 유도를 즐기는 푸틴도 예밀리야넨코의 열렬한 팬이다. 푸틴이 경기장을 직접 찾은 것은 최근 잇따른 패배로 슬럼프에 빠져 있는 그를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관중들은 푸틴이 갑자기 나타나 축하 연설을 하자 반기기는 커녕 ‘우’하는 함성과 함께 휘파람을 불며 야유를 보냈다. 푸틴은 대중 앞에서 이런 수모를 겪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예밀리야넨코가 용사와 같은 성격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며 겨우 연설을 겨우 마친 뒤 그에게 악수를 청했고, 관중은 그제서야 박수를 보냈다. 이 모습은 국영 라시야-2 채널을 통해 전국으로 방영됐다. 트위터에서는 “한 시대의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퍼져나갔다. 러시아의 한 언론은 “이날 반응은 내년 3월 대선을 통해 대통령직 복귀를 선언한 푸틴 총리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이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푸틴은 2000~2008년 두 번 대통령직을 역임한 뒤 3연임을 금지한 헌법에 막혀 총리로 물러났다가 내년 대선에 다시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최근 중산층을 중심으로 그의 복귀를 반대하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AP통신은 “푸틴 총리의 지지도가 최근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며 “사회학연구소 레바다의 10월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이 1년 전 77%에서 61%로 16%포인트 내려앉았다”고 전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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