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약사법 개정안이 '종합편성채널에 의약품 광고 몰아주기'라는 정치적 논란이 더해지면서 올해 내 국회 통과가 무산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야 간사는 21일 열리는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약사법 개정안을 상정하지 않기로 최근 합의했다. 당초 의약품 오남용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치열했던 이 사안에 대해 최근 약사단체들이 "상비약 약국 외 판매는 정권 차원의 종편 광고 몰아주기의 일환"이라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혼돈에 빠진 것이다.
약사단체 중 하나인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은 지난 17일 성명서를 내고 "이명박 정부는 종편을 먹여살리기 위해 의약품 분류를 통해 광고시장 확대를 추진했고, 늘어난 의약품 광고시장의 유지를 위해 의약품을 팔 수 있는 장소의 수를 확장하는 약사법 개정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계획은 조중동 종편 특혜를 위한 깔때기로 약사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시중 위원장은 지난해 말 업무보고에서 전문의약품 광고 허용 가능성을 언급, 보건복지부가 진화에 나서는 등 논란을 일으켰다. 이승용 약준모 팀장은 "정권의 목표는 가정상비약 슈퍼마켓 판매가 아닌 편의점 판매"라며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편의점을 통해 일반약을 판매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은 "의혹 해소를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의약품 분류가 끝난 뒤 약사법 개정을 논의하겠다"며 이번 국회 처리를 반대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적극 나서지 않았다.
식약청은 현재 의사 처방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전문의약품(광고 불가)과 약국에서 바로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광고 가능)의 재분류 작업을 하고 있으며 내년 1, 2월께 마무리할 계획이다. 국회 보건복지위 민주당 간사인 주승용 의원 측은 "의약품 재분류 과정에서 약사 달래기나 종편 광고 확대를 위해 전문의약품을 일반의약품으로 많이 뺄 수도 있어 결과를 본 뒤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가 이 대통령의 지시로 추진됐다는 점도 이런 불신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종편 광고 몰아주기'는 말도 안된다는 입장이다. 일반의약품은 지금도 광고가 가능해 감기약 등 일부가 편의점에서 판매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다. 김국일 복지부 의약품정책과장은 "전문의약품은 부작용이 심각해 의사 처방을 기본으로 하는 것들인데, 어떻게 함부로 일반약으로 넘기겠느냐"며 "일반약과 전문약의 경계가 불분명해 논의를 하고 있는 의약품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도 광고를 할 수 있는 일반약도 편의점 판매가 이뤄지면 소비자의 광고 의존도가 더 커져 의약품 광고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반박도 많다.
회사원 이모(32)씨는 "약국 외 판매를 통해 정부가 한쪽의 이익을 챙겨주려 한다면 그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그러나 국민이 약국 외 판매를 원하고 있어 그런 방향으로 노력해야 하는 게 국회의 역할 아니냐"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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