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국회의장이 18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문제와 관련 "어떤 국회의장이 합의 처리를 마다하겠느냐. (그러나 직권상정으로) 가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다 있다"며 직권상정 가능성을 강력 시사했다.
박 의장은 이날 국회 의장실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좋아서 그 길(직권상정)로 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중재 노력을 할 수 있는 수단도 방법도 없고 내가 가진 화살을 다 쏘았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박 의장은 '직권상정 후 강행 처리를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는 질문에 "많은 국민이 이해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답했다.
한 측근은 "직권상정 요청이 오면 절차를 밟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고, 한나라당 황영철 원내대변인도 "필요한 시기가 되면 직권상정을 공식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가에선 여당이 24일 요청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야당이 지난 16일 이명박 대통령의 '한미 FTA 발효 후 3개월 내 투자자ㆍ국가소송제도(ISD) 재협상'제안을 거부하면서 여야 협상파의 입지는 급격히 위축됐다. 딱히 다른 절충안도 없어 현 정국이 직권상정ㆍ강행 처리로 귀결되고 있다.
박 의장은 민주당에 대한 섭섭함도 토로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결정하는 건 미국 의회인데 누가 대신해서 (ISD 철폐 약속을) 해주겠다는 것이냐.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고 민주당 측을 겨냥했다.
그는 손학규 대표 등 지도부를 향해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통 큰 정치인이 됐으면 한다"며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중간평가를 내세웠지만 김 전 대통령이 국익을 고려해 청와대를 방문, 중간평가를 포기토록 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김대중 선생이 계시면 뛰어가서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박 의장은 그러면서 중국 남송 시대 육유의 한시 중 '산중수복 의무로 유암화명 우일촌'(山重水複 疑無路 柳暗花明 又一村.ㆍ첩첩 산중에 물이 겹겹이라 길이 없을 성 싶어도 버드나무 흩날리고 꽃이 피어 오르는 그곳에 또 다른 마을이 있다)이란 구절을 인용하며 "나는 항상 우일촌을 믿지만 이번에는 무일촌(無一村ㆍ마을이 없다)이다. 이게 내 심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이날 예산안과 민생법안을 먼저 처리한 뒤 한미 FTA 비준안을 다루자는 '분리 처리'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비준안을 강행 처리 하면 국회가 마비돼 예산안, 민생법안 등이 다 날아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이명규 원내수석부대표는 이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 예산안 처리 시한(12월2일) 이전에 FTA를 처리해야 한다"고 일축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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