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남친(남자 친구)을 하나 사귀었어요. 친절한 미소와 온화한 목소리, 완전 뻑 갔죠. 그리고 사랑의 표현은 얼마나 감미롭던지. 그래서 전 결혼까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 카카오톡으로 편지를 하나 보냈어요. '잘 안 맞는 것 같으니까 끝내자.' 단 한 문장. 평소 친절하고 온화한 모습과는 완전 다른 사무적 통보. 얼굴 보고 '나 너 이런 게 싫다'고 자세히 설명이라도 했으면 마음 편하게 접을 수 있고 상대에 대한 신뢰도 크게 금 가지 않을 텐데 이건 이 한 문장이니 원."
이별은 인륜지대사다. 인륜지대사의 대명사 격인 결혼만큼이나 인간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만큼 상대에게 최대한의 예절과 성의를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치 결혼할 때처럼. 하지만 신세대의 이별 풍속도는 그 반대쪽 저 만치에 있다. 요즘 가장 사랑받는 이별 매체는 바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휴대폰 문자메시지, 인터넷 이메일. 모두 전자 매체니 이를 통한 결별을 '전자 이별'이라고 해도 좋을 듯한데, 이런 식의 이별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최근 미국 인터넷 뉴스 사이트 씨넷이 설문 조사 업체 마켓리서치랩42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을 보면 미국에서 '전자 이별'은 이미 시대적 대세다. 18세 이상 성인 인터넷 이용자 5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33%가 '페이스북,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으로 이별해 봤다'고 답했다. 또 40%는 '앞으로 페이스북 등으로 이별할 계획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 한 가지. 52%가 '이별 직후 내 페이스북 상태 메시지를 바꿨다'고 한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싸이월드의 방명록을 닫거나 기분 상태 아이콘을 변경하는 것인데 일종의 위장 전술쯤으로 보면 된다. 반면 '마음에 드는 이성과 첫 데이트를 한 이후 페이스북에 친구 신청을 했다'는 응답은 57%나 됐다.
어디 이별뿐이겠는가. 사람을 만나기 위한 수단으로도 전자 매체는 듬뿍 사랑을 받았다. '연인을 새로 만나기 위해 이용하는 수단'에 대한 질문에 페이스북이 24%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휴대폰 통화(16%), 문자메시지(11%), 이메일(5%)이었다. 이런 전자 수단을 합치면 모두 56%로 대면 접촉의 42%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전자 이별'이 비단 미국만의 얘기겠는가. 첨단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는 한국도 마찬가지. 인터넷에 가서 '이별 스토리'이라는 키워드를 한번 두들겨 보라. 그러면 열에 서넛은 '전자 이별'임을 직시할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이리 '전자 이별'에 열광하는 것일까. 바로 끝맺음의 편의성 때문이다. "복잡한 과정 안 거치고 이별 통보하니 마음과 시간에 부담이 없다"는 한 인터넷 사용자의 게시판 속 이별의 변은 이런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렇다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전자 매체로 이별을 통지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 이에 대해 인간관계 컨설턴트 유옥 박사는 "사랑이란 것이 원래 인간관계이니 이것을 정리하는 것은 당연히 인간적으로 해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전자 이별'이란 지극히 비인간적인 수단은 절대 배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전자 이별'은 상대가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게 하고 통보자에 대한 극단적 반감을 키우기 때문에 방법론 적으로도 문제가 많다"며 "이메일 해고 통지의 역작용을 생각하면 간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젊은이들이 이런 행동을 통해 사랑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유 박사는 "이렇게 간단하게 이별하다 보면 사랑이 인스턴트식으로 즉각 시작했다가 즉각 끝낼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젊은이들에게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은호 선임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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