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에서 타협은 진정 불가능한 것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의 합의 처리 전망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강행처리와 실력저지라는 지긋지긋한 구태가 재연될 조짐이다. 한나라당은 한미 FTA 조속처리를 당론으로 정하고, 시기와 방법은 지도부에 일임키로 했으며 민주당은 모든 것을 바쳐 막기로 했다. 이 흐름대로 가면 충돌은 불 보듯 뻔하고, 해머나 전기톱처럼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 어떤 '신병기'가 나와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지 벌써부터 걱정된다.
이 대목에서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은 한미 FTA를 비준만 하면 나라가 흥하고 국민이 잘 살게 된다고 확신하는지, 반대로 민주당은 투자자ㆍ국가소송제(ISD)를 없애지 않으면 우리가 미국에 예속된다고 진짜로 믿는지를 묻고 싶다. 민주주의와 산업화가 어떤 나라에서는 꽃을 피우고, 어떤 나라에서는 실패하듯 한미 FTA도 그 나라와 국민의 노력에 따라 10년 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여야 의원들도 이런 가변성을 다 알고 있다고 본다. 누군가 한미 FTA의 미래를 확신한다고 외치고 있다면, 그것은 정치적 입지를 고려한 선택이거나 지적인 편향성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래를 확신할 수 없다 해도 더 나은 조건을 마련하도록 국회가 정부를 채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모든 선택에는 때와 여건이라는 게 있다. 이미 미국이 비준을 마치고 한국의 민감한 논쟁을 감안, ISD 재협상 입장까지 밝힌 마당에 "양국 장관급 서명을 받아오면 다시 논의해보겠다"는 야당의 태도는 의도가 다른 데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한나라당이 날치기를 강행, 국민적 지탄을 받기를 기대하는 책략으로도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강행처리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야당의 요구대로 미국과 막후 협상을 벌이지 못할 이유도 없다. 미 정부도 의회의 반발을 이유로 세 차례나 재협상을 하지 않았던가. 정부가 그런 노력을 기울여본 뒤에도 민주당이 버틴다면 국민적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할 때 대타협의 돌파구를 마련한다면, 그게 국민이 바라는 새 정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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