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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기로에 선 영화평론가협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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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기로에 선 영화평론가협회상

입력
2011.11.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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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영화계에서도 다양한 시상식이 열린다. 그 주요 목적은 한 해 동안 거둔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다. 시상식의 성격에 따라 어떤 종류의 성취를 더 높이 평가하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즉 산업으로서의 영화를 중시하는 시상식은 대중의 호응을 얻는데 성공한 작품에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변덕스러울 뿐 아니라 점점 까다로워지는 대중의 취향을 감안할 때 일반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의 기획과 제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에 예술로서의 영화를 중시하는 시상식은 작품의 흥행 여부에는 상대적으로 무심한 편이다. 대신, 감독의 창의성이나 미학적 완성도가 평가의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이런 지향성 역시 대규모 자본이 주도하는 관습적인 영화 환경에서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갖는다. 표면적으로는 후자가 윤리적으로 더 그럴 듯해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도덕적 우월감이 세태 변화에 대한 둔감함으로 변질될 위험도 크다. 상투성을 깨면서 한국영화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화인들의 존재감을 알리는 순기능의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자칫 일반관객을 배제한 '그들만의 잔치'로 고착될 가능성이 엄존하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한국영화평론가협회(영평)가 주최하는 영평상 시상식은 전통적으로 후자에 가까운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문제는 시상식의 연륜이 쌓여갈수록 위와 같은 순수한 지향성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 닥쳐오고 있다는 점이다.

11일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됐던 제31회 영평상 시상식과 심사과정에서 오래 된 심사규정 등을 놓고 벌어졌던 갑론을박은 영평 차원의 신중한 전환을 촉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래 영평상 시상식은 영화평론가들이 '소신껏' 지지하는 영화인과 작품을 '소박하게' 축하하는 행사였다. 큰 상금이나 화려한 레드 카펫이 없어도 초대된 영화인들이 그 조촐한 자리에 꼬박꼬박 참가한 것은 전문가들의 진정성을 높이 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지가 지배하는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정신없이 터져주어야만 공식적인 행사로서의 존재의미가 생긴다. 주요 미디어는 물론 팬클럽을 포함한 대중의 카메라가 인증 쇼트들을 광범위하게 유통시켜주지 않는 한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소위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것)'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배우들에겐 플래시 세례와 환호성이 없는 적막한 행사장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한류 바람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은 국가 간의 지리적 경계가 무의미한 시대다. 한국영화계의 경우도 스타 배우들뿐 아니라 스타 감독 등 더 많은 영화인들이 해외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각종 해외영화제 방문도 일상사가 된 지 오래다. 올해 영평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무산일기> 의 박정범 감독 역시 일본에 가있는 바람에 행사장에 오지 못했다. 외국배우나 스태프와의 협업에도 가속도가 붙고 있는데, 이번 영평상 여우연기상을 한국 배우가 아니라 <만추> 의 탕웨이가 수상한 것은 바로 이런 흐름의 여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따라서 영평상 시상식이 수상자와 하객이 줄어드는 민망한 잔치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꼼꼼한 재정비가 필요하다. 우선은 더 바빠질 것이 분명한 국내외 수상후보자들의 복잡한 스케줄을 한참 전부터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수고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자아가 강한 영화인과 일반관객을 절묘하게 끌어안는 혜안을 보여주는 거야 말로 이 시대에 영화평론가가 감당해야 할 직분이 된 듯싶다.

김선엽 수원대 연극영화학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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