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가 '특허괴물'로 유명한 램버스와 8년 동안 끌어온 반독점 소송에서 판정승을 거뒀다. 졌다면 최소 30억 달러(4조4,000억원)에서 최대 120억 달러(13조6,00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냈어야 했던 만큼, 이번 승소로 하이닉스는 큰 짐을 덜게 됐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법원에서 16일(현지시간) 진행된 램버스와의 반독점 소송에서 하이닉스의 승소판결을 내렸다. 배심원들은 9월21일부터 두 달 가까이 격론을 지속한 결과, 배심원 12명 가운데 9명이 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 D램 업체들의 담합 행위가 없었으며 따라서 램버스도 피해를 본 일이 없다고 최종 결정했다.
이번 소송은 8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램버스는 지난 2004년5월 대표적 D램 생산업체인 하이닉스 마이크론 인피니온 등의 담합으로 인해 자기회사 디자인 제품(RD램)이 시장에서 퇴출됐고, 이에 따른 손해액이 약 39억달러에 달한다며 법원에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램버스는 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이 고의로 RD램을 높은 가격에 생산,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시키려고 했다는 주장을 펴왔다.
하지만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측은 "당시 RD램은 생산 공정이 까다롭고 제조 비용이 많이 드는 제품이었다"고 반박했고, 대다수의 배심원들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였다. 만약 램버스의 주장이 수용됐다면 하이닉스는 샌프란시스코 주 법에 따라 최대 3배까지 배상을 해야 했다.
램버스가 판결에 불복해 고등법원에 항소할 가능성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배심원들의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항소심은 법률심으로 배심원 심리 절차 없이 판사들에 의해서만 재판이 이뤄지므로 법리상으로 우위에 있는 D램 업체들의 입장이 관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1990년3월 설립된 램버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주로 개인이나 기업들로부터 특허기술을 사들인 다음 특허관리가 허술한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로열티나 합의금을 받아내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 내에서도 대표적인 특허괴물로 꼽힌다.
권오철 하이닉스 사장은 "이번 배심원 결정을 환영하며 지난 5월13일 특허침해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데 이어 반독점 소송에서도 이김으로써 11년간 진행된 램버스와의 소송에서 결정적 승기를 잡았다"고 평가했다.
앞서 하이닉스는 이번 반독점 소송과 별도로 올해 5월 미국 연방고등법원에서 진행 중인 램버스와의 특허 항소심에서도 승소했다. 하이닉스는 2009년3월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지방법원에서 램버스의 D램 반도체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과 로열티 등 4억 달러 상당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하이닉스는 당시 결과에 불복, 연방고등법원에 항소에 승소를 이끌어냈다.
권 사장은 "이번 판결로 미국에서 남발되는 특허괴물의 무분별한 특허소송에도 경종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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