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항로, 대서양항로가 발견된 대항해시대 첫번째 세계 패권국으로 떠오르며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에 광대한 식민지를 경영했던 나라 포르투갈. 19세기 초 브라질 독립을 용인하며 시작된 포르투갈의 국력 쇠퇴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높은 실업률과 낮은 생산성에서 비롯된 재정위기 때문에 쇠락의 강도가 갈수록 심해지는 모습이다. 급기야는 1975년까지 식민 지배를 하던 아프리카의 앙골라에 총리가 직접 날아가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영국 BBC 방송은 국유자산 민영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앙골라를 방문한 페드로 파소스 코엘류 포르투갈 총리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앙골라 기업의 포르투갈 국영기업 지분 매입을 환영한다"고 밝혔다고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포르투갈 구제금융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국영기업 매각의 물주를 앙골라에서 찾겠다는 게 코엘류 총리의 방문 의도다. 탑포르투갈 항공, 전력회사 EDP, 국영은행 방코 포르투갈 드 네고치오스 등이 민영화 매물로 나와 있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0.68%에 불과한 포르투갈과 달리, 나이지리아에 이어 아프리카 제2의 산유국인 앙골라는 경제가 승승장구를 거듭해 과거 식민 지배국의 대형 기업을 사들일 정도로 성장했다. 아프리카 서남부에 위치한 앙골라의 1인당 국민소득(GNI)은 3,000달러대에 불과하지만, 석유를 무기로 최근 10년간 연평균 11%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석유 수출로 돈을 벌어들인 앙골라는 포르투갈 기업의 주식을 대거 사들이며 과거 식민지배국의 경제를 서서히 잠식해 가고 있다. 포르투갈 국제관계안보연구소(IPRIS)의 분석에 따르면 포르투갈 상장회사 지분의 3.8%를 앙골라 기업이 보유하고 있으며 앙골라의 대(對)포르투갈 투자금액도 2002년 210만달러에서 2009년 1억5,600만달러로 74배 증가했다.
포르투갈 경제의 앙골라 의존도가 높아지는 현실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반부패운동가 라파엘 마르케스는 부패가 만연한 앙골라의 현실을 지적하며 "포르투갈이 받는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호세 도스 산토스 대통령이 1979년부터 장기집권 중인 앙골라는 대통령 가족이 주요 기업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데 이들이 투자를 구실 삼아 포르투갈을 돈세탁 창구로 이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또 있다. 저성장과 고실업 때문에 국내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포르투갈 청년들이 앙골라로 몰리면서 고급인력 유출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생산성이 낮은 포르투갈로서는 인재 확보가 경제성장의 필수 요소지만 대학원을 졸업한 포르투갈 젊은이들은 경제 사정이 좋고 말이 통하는 과거 식민지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포르투갈에서 900유로(137만원)의 월급을 받는 엔지니어가 앙골라에 가면 그 4배를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앙골라행 비자를 받은 포르투갈인은 2006년 156명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2만3,000여명으로 늘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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