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 이어 이탈리아의 재정위기로 유로경제권은 1999년 출범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스가 IMF와 독일, 프랑스 등 유로경제권 국가들로부터 추가지원을 받기로 하고 겨우 파산을 모면하자 이제는 이탈리아가 국가부도에 직면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그 동안 온갖 스캔들을 불러일으킨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사임하고 마리오 몬티 총리가 비상내각을 구성하여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정책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유로 경제권이 이번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세계경제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상황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사회서비스 비중 낮았던 게 원인
그렇다면 그리스, 이탈리아가 국가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이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일각에서는 과다한 복지지출이 이들의 재정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분석하면서 우리나라도 복지정책 확대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복지 프로그램이 국가재정지출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분석이 어느 정도 타당할 수 있으나, 복지지출이 그리스, 이탈리아 재정위기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그리스, 이탈리아는 경기침체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속적인 하향국면에 빠져 있었다. 대외 경기변화에 취약한 경제구조를 효과적으로 개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경우 국가 행정체계가 취약해 재정관리가 매우 부실했다. 더욱이 지하경제 규모가 전체 국민생산의 20%를 상회하는 등 조세행정도 형편없이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스에서 자영업자의 70%가 과세점 이하의 소득을 신고해 세금을 면제받았고 상류소득층인 의사들도 대부분 탈세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그리스 정부는 최근까지도 국가부채의 규모가 얼마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구멍 난 재정을 메우기 위해 해외차입에 의존하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복지지출 측면에서 그리스, 이탈리아는 여타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그 수준이 높은 편에 속하지 않는다. 국가 재정지출에서 복지의 비율이 높은 나라들은 스웨덴, 독일, 프랑스 등이다. 이들은 2007년 기준 국가전체지출 대비 복지지출이 53%를 넘는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복지지출은 유럽에서 중간 정도의 수준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리스는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만일 복지가 경제위기의 근본적 이유라고 한다면 스웨덴, 독일 등이 가장 먼저 경제위기에 빠졌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은 오히려 튼튼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경제위기를 차분히 대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복지정책 측면에서 그리스, 이탈리아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다. 이들은 복지지출에서 연금의 비중이 아주 높은 반면,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보육과 교육훈련 같은 사회서비스 지출의 비중이 아주 낮다. 복지에 대한 지출이 경제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투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회적 소비로 그치고 있다고 판단되는 대목이다. 이들과 달리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은 사회서비스 비중을 높이면서 복지국가의 성격을 사회적 투자국가로 만들어 가고 있다.
복지의 틀 다시 짜는 전기 마련해야
유럽의 국가들에 비해 한국의 복지지출 규모는 여전히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편으로 복지지출이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연금과 건강보험에 대한 지출의 비중이 높은 반면 사회복지 서비스에 대한 지출은 아주 낮은 것이 사실이다. 이태리, 그리스 위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대목이다. 향후 고령화와 저출산 시대를 맞이해 복지 수요는 불가피하게 증가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조건 복지지출을 억제하거나 확대하자는 주장을 하기 보다는 필요한 곳에 복지를 제공하는 동시에 사회 투자로서의 성격을 강화하고, 복지재정의 적절한 통제기제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국가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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