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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박원순 시장의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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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박원순 시장의 뿔

입력
2011.11.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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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은 첫 출근을 하던 날 공무원들에게 "제가 뿔 달린 사람 아니죠?"하고 물었다. 종북 좌파라는 의심과 궁금증을 풀어 주어 안심시키려는 말이었다. 그러나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을 폭행했던 60대 여성이 박 시장을 빨갱이라고 때린 일에서 보듯 그를 뿔 달린 괴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은 것 같다. 이회창 씨가 대통령이 될 때까지 그런 일을 계속하겠다는 사람이니 별로 의미 있는 폭행도 아니긴 하지만.

소통ㆍ복지 지향하는 파격 행보

박 시장은 당선 후 3주 만인 16일, 초유의 온라인 취임식을 열고 SNS 실시간 소통까지 함으로써 세상이 변했다는 것, 서울시장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케 하고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집 구경 시키듯 집무실을 두루 소개하고 시민시장의 의자,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는 마음가짐의 상징물로 '기울어진 책장'을 보여주기도 했다.

반대자들의 의심과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박 시장은 애를 많이 쓰고 있다. 뿔 달린 괴물이 아님을 증명하듯 서울시 인사를 보수적으로 행함으로써 오히려 진보진영으로부터 섭섭한 소리를 들은 것도 호평을 받고 있다. 지하철 출근, 생기 없는 회의 분위기 바꾸기 등 소통을 꾀하는 파격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선거 캐치프레이즈 그대로 '내 삶을 바꾸는 첫 서울시장'의 이미지가 먹혀 들고 있는 양상이다. 복지시장이 되겠다는 약속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박 시장은 또 다른 지방자치단체와의 유대ㆍ협력을 활발히 다지고 있다. 정치적 의도가 없는 한 필요하고 좋은 일이다.

걱정스러운 점도 많다. 10ㆍ26 보선을 앞두고 나경원 후보와 TV토론을 할 때 박 시장은 "단식부기는 구멍가게나 하는 일"이라며 복식부기를 기준으로 서울시의 빚(부채) 7조원을 줄이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러나 10일 예산안 발표 때는 단식부기를 기준으로 빚(채무)을 7조원 이상 줄이겠다고 말을 바꿨다. 채무는 이자를 붙여 지급하는 차입금으로 단식부기를 기준으로 하며 부채는 자산계정에 대비되는 부채계정에 들어가는 임대보증금 등 모든 금액을 포함한다. 정부 회계기준 등에 관한 전문성이나 현실감각이 부족해 빚어진 일이겠지만, 비슷한 실수가 빚어지지 않을지 우려된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박 시장이 아직 시장과 시민운동가의 경계에 선 채 좌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2009년 5월 서울광장 '하이서울 페스티벌' 개막식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5억8,000만원을 날려 보낸 '촛불 1년 범국민대회'주모자들에 대한 법적 징계문제를 먼저 지적할 수 있다. 서울시는 항소심까지 가는 2억여 원의 손해배상 소송 끝에 승소했으나 박 시장은 그들이 사과를 했다는 이유를 들어 당선 13일 만에 없었던 일로 만들어 돈 받기를 포기했다. 이것은 잘못이다. 재판을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던 공무원들이 새 시장의 뜻을 받들어 말을 바꾸는 '영혼 없는 공무원들'이 된 게 안쓰럽다.

박 시장이 동국대 특강에서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철폐 투쟁을 왜 하지 않느냐?"고 말한 것은 귀를 의심케 한다. 등록금을 내지 않는 스웨덴 핀란드를 거명하며 박 시장은 투쟁을 선동했다. 나라마다 경제여건이 다른 데다 공짜 등록금이 가능해지려면 세금부담 체계가 달라져야 할 텐데, 박 시장은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제 시민운동가에서 시장으로

박 시장은 자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것일까? 가끔 무대에 올라오는 안철수 씨를 제외하면 좌에 대해서든 우에 대해서든 그는 지금 차지한 공간이 가장 넓고 활동반경이 가장 큰 사람이다. 좀 과장을 섞으면 그가 가는 곳은 곧 길이 된다. 단순히 그냥 서울시장이 아닌 것이다.

박 시장에게 뿔이 있다면 그것은 시장인지 시민운동가인지 알 수 없게 하는 이마의 피지(皮脂)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뿔이 있는 동물에게는 날개가 없다. 날개가 없으면 날지 못한다. 그 뿔을 서둘러 제거하고 시민운동가 출신의 시장으로서 새로운 길과 놈(norm)을 추구함으로써 진정으로 '내 삶을 바꾸는 시장'이 되기 바란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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