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서울 지하철 1ㆍ4호선 창동역 민자역사 공사현장. 붉은 녹이 내려앉은 철골 구조물이 앙상하게 드러난 건물 곳곳에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바로 옆에 아파트 단지가 자리잡고 있어 흉물 그 자체다. 이 건물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2004년 지하 2층∼지상 11층 규모의 상업시설로 개발을 추진, 예정대로라면 올해 10월 준공식을 갖고 문을 열었어야 했다. 하지만 자본을 투자한 민간시행사 경영진의 비리로 지난해 11월부터 공사가 전면 중단됐다.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사도 비슷한 상황이다. 2002년 말 시작된 민자역사 개발사업이 무려 10년간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당초 백화점, 영화관 등이 들어선 지상 17층 규모의 복합상업시설로 개발할 계획이었으나, 민간사업자의 불법 사전분양과 계약금 횡령 등 잡음이 끊이지 않다가 코레일과 법정 다툼까지 벌어져 결국 파산선고 결정이 내려졌다.
코레일이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역사를 현대화하려는 민자역사 개발사업이 줄줄이 실패하고 있다.
16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코레일이 출자해 사업을 진행 중인 민자역사는 전국에 19개로, 사업비만 4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공사를 마치고 정상 운영 중인 역사는 13개에 불과하다. 최근 추진된 6개 사업이 줄줄이 중단되거나 무기한 지연되고 있다. 성북역사의 경우 1996년 개발회사를 설립했으나 자본금 확충, 용도변경 등의 문제로 현재까지 건축허가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안산중앙역사는 대표이사의 배임 의혹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또한 천안 민자역사는 2007년 건축허가를 받은 뒤 4년이 지났지만 투자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미착공 상태이고, 투자자들 대상으로 이미 분양까지 끝낸 창동과 노량진역사는 공사 중단으로 2,000억원 규모의 피해가 발생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연말까지 착공하지 못하는 사업장은 협약을 해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자역사 사업은 '국유철도의 운영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토지소유자인 코레일과 민간이 공동 출자해 낡은 역사를 신축해 코레일에 제공하고 기타 상업시설을 사업자가 30년간 사용한 뒤 기부채납 하는 구조다. 즉, 민간사업자가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는 사업이라 우량 투자자 유치가 관건인 셈이다. 그런데 코레일은 투자비 부담을 이겨낼 만한 우량 사업자를 유치하는데 실패했다. 서울역 영등포역 수원역 등 이미 완공된 민자역사는 대부분 대기업이 사업주관자인 반면, 창동역 노량진역 천안역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은 대부분 영세한 투자자다.
정상 운영 중인 대기업 민자역사도 경영난을 겪긴 마찬가지다. 운영수익이 발생하기 전부터 역사신축비용을 지불한데다 연간 수익을 지분에 따라 배당해야 하고, 매년 수십 억원의 점용료도 따로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 18개 민자역사 운영회사 중 8개는 자본잠식 상태다. 이들 8개사의 총 자산(2010회계연도 결산 기준)은 1조2,278억원인 반면, 부채는 1조3,357억원에 달한다.
박용석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민자역사의 경우 공익 측면도 있는 개발인 만큼 사업 부담을 정부와 민간사업자가 함께 질 수 있도록 사업구조를 개선해야 하며 코레일도 무분별한 민자역사 확충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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