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조광래호'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웠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은 15일 베이루트에서 열린 레바논과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B조 5차전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1-2로 패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46위에 불과한 상대를 맞아 내용 면에서 완패였다는 점이 충격을 더한다. 최종 예선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몰렸다. '조광래호'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높다.
조 감독은 16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선수단 전체가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주축 선수들이 복귀하는 쿠웨이트전에서는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좋지 않은 그라운드 사정과 심판 판정도 경기력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그러나 '최상의 조건에서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는 말은 변명에 불과하다. '베이루트 쇼크'는 '조광래호'에 내재됐던 불안 요소들이 한꺼번에 폭발한 결과다.
▲안이한 대처가 화를 키웠다
'베이루트 쇼크'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다. '조광래호'는 지난 8월부터 꾸준히 불안 요소를 노출해왔다. 지난 9월 쿠웨이트와의 원정 경기(1-1)를 시작으로 11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전(2-0)까지 대표팀은 만족스러운 경기력을 보이지 못했다. 박주영(26ㆍ아스널)의 득점포에 의지해 근근이 승점을 따냈을 뿐이다.
3경기를 치르는 동안 '조광래호'를 둘러싼 불안감이 커졌지만 정작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안일하게 대처했다. 소속 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A매치에서도 부진을 거듭하는 지동원(20ㆍ선덜랜드), 구자철(22ㆍ볼프스부르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구멍 난 포지션에 새로운 선수를 수혈할 생각을 하지 않고 '하석상대'식의 용병술을 고집했다.'궁여지책'은 결국 치욕스러운 패배로 이어졌다. 정해성 전남 감독은 "선수단을 재정비해야 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백지 상태에서 선수 선발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정신자세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며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 감독은"박주영(아스널), 기성용(셀틱), 이청용(볼턴)이 돌아오는 쿠웨이트전에서는 달라진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베이루트 쇼크'의 원인이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컸기 때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설득력은 떨어진다.
▲발등의 불부터 꺼야
조 감독은 뚜렷한 축구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잠재력 높은 젊은 선수를 선호한다. 대표팀 사령탑에 취임한 후 끊임 없이 '젊은 피'를 수혈해왔다. 상대적으로 경험 있는 베테랑들이 대표팀에 설 자리가 좁아졌다.
젊은 선수들은 폭발력은 뛰어나지만 안정성에서는 베테랑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위기 관리 능력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이 같은 사실은 레바논전에서 여실히 확인됐다. 선제골과 결승골을 허용하며 끌려가자 공격과 미드필드진은 우왕좌왕했다. 그라운드에서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없었다. 생소한 포지션에 나선 선수들은 어이 없는 실수를 연발했다. 구자철은 어이 없는 파울로 페널티킥을 헌납하는 결정적인 실책을 저질렀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서 뛴 다는 보장이 없더라도 위기 상황에서 믿고 기용할 수 있는 베테랑의 존재가 아쉬운 것이 '조광래호'의 현실이다. 미래 지향적인 용병술과 선수 관리도 중요하지만 현실과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한다. 박항서 전 전남 감독은 "젊은 선수를 육성하는 것도 좋지만 대표팀은 최고 선수로 구성돼야 한다. 신예 발굴은 올림픽 대표팀에서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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