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기다렸다는 듯 신속하게 입장을 내놓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발효 뒤 3개월 내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재협상' 카드를 공개하자 다음날(15일ㆍ현지시간) 곧바로 오케이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한미 당국간 사전 교감에 따른 것일 수 있으나, 한미 FTA에 적극적인 미국의 의지를 다시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통상 당국자는 이날 한국 정부의 ISD 재협상 추진에 대해 "한미 FTA가 발효되면 한국 측이 제기하는 어떤 이슈도 협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연합뉴스에 밝혔다. 이 당국자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서신교환을 통해 한미FTA 서비스ㆍ투자위원회를 설치키로 했다"면서 "이 위원회에서 ISD를 포함한 어떤 현안도 논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백악관과 USTR이 사전 조율한 미국의 유연한 입장은, 여론에 밀리고 있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우선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실 미 당국이 '협의할 수 있다'는 원론적 언급보다 수위를 높여 재협상 대상과 채널까지 지목한 것은 드문 일이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본격적인 대선 운동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한미FTA를 최대의 경제치적으로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 있다. 경제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무역증대를 꾀하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한미 FTA가 첫 성과물이란 점도 오바마의 등을 떠민 배경으로 보인다.
한국의 한미 FTA 재협상 여론에 침묵했던 미국이 태도를 바꾼 이유는 더 있다. ISD 재협상은 USTR 실무진이 진행하는데다, 협상 종료시간도 정해진 게 없어 정치적 부담감이 적은 편이다. 만약 한미 FTA가 연말에 비준되면 ISD 재협상은 이르면 내년 4월, 늦으면 6월에야 가능하다. 이 때는 한국, 미국 모두 선거 정국이기 때문에 ISD를 둘러싼 여론 압박이 지금보다 덜할 수 있다. 결국 '선 FTA 발효 후 ISD 협상'은 실리에서도, 명분에서도 미국이 손해 볼 게 없는 카드라 할 수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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