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가 ‘오빠 구하기 작전’에 노골적으로 나섰다. 그의 오빠는 부패 혐의를 받고 국외 도피 중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 내각이 친나왓 전 총리의 국내 복귀를 염두에 두고 사면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잉락 총리가 오빠의 ‘특혜 사면’에 개입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간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내각은 15일 차렘 유밤룽 부총리가 주재한 비공개 회의에서 푸미폰 국왕 명의로 다음달 단행되는 사면 포고령을 통과시켰다. 태국 정부는 국왕의 생일인 다음달 6일 2만 6,000여명을 사면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면령은 60세 이상 고령이면서 징역 3년 미만의 형을 받은 경우에 한해 사면할 수 있도록 했다. ‘부정부패 가담자는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했던 지난해 사면령과 달리 제한규정도 두지 않았다. 탁신 전 총리가 62세이고 궐석재판에서 부패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탁신을 위한 사면조건인 셈이다. 태국 언론이 ‘탁신 친화적 사면’이란 꼬리표를 달았을 정도다.
탁신의 막내 여동생인 잉락 총리는 표면적으로 사면령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모양새를 취했다. 태국 정부는 각의가 열릴 당시 잉락 총리는 싱부리주(州)의 홍수 현장을 시찰하기 위해 방콕을 떠나 있었다며 총리는 사면령과 무관하다고 해명하고 있다. 정부는 또 총리가 시찰에 이용한 러시아제 Mi-17 헬기가 야간비행을 위한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지 않아 방콕으로 복귀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잉락 총리도 논란이 확산되자 “각의에서 사면령을 논의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발뺌했다. 그러나 군 관계자에 따르면 Mi-17 헬기는 정부 발표와 달리 야간용 레이더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정부의 해명을 받아들이더라도 총리가 비상상황을 대비해 준비된 둔 예비용 헬기를 이용하지 않은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탁신 사면을 그의 정계 복귀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의심해 왔던 야권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시리초케 소파 의원은 “사면령의 기준은 명백히 탁신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이라 주장했고, 같은 당의 사디트 옹홍테이 의원은 “매년 의례적으로 이뤄지는 국왕 생일 기념 사면을 각의에서 왜 비밀리에 처리했겠느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에서 도피생활을 하고 있는 탁신은 8월 잉락 총리 집권 이후 “가족과 집이 있는 태국이 매우 그립다”며 “적당한 시기에 복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잉락 총리는 오빠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을 것이라 공언했지만, 탁신이 각종 요직 인선에 깊숙이 개입하며 ‘원격 수렴청정’ 한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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