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7일 설 연휴의 끝자락. 강원 인제의 처가에서 귀경하던 정모(41)씨 일가족이 탄 뉴EF승용차가 도로 옆 축대를 들이박았다. 이 사고로 조수석에 탔던 부인 한모(34)씨와 당시 9살, 4살이던 두 딸이 숨졌다. 3~4일 후 의식을 회복한 운전자 정씨는 경찰에서 "사고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지만 졸음운전을 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사고 일주일 전 한씨가 교통재해로 사망하면 각각 3억 1,000만원과 3억 7,500만원의 보험금을 타는 생명보험에 든 사실이 확인된 것. 이들 부부는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40만원짜리 방에 겨우 살고 있던 터였다. 더욱이 정씨는 1년 전부터 이혼남 행세를 하며 신모씨와 내연관계를 맺어오다 부인 한씨에게 이혼을 요구하던 상태였다. 정씨가 부인과 이혼문제로 실랑이를 벌인 게 공교롭게도 교통사고가 나기 1주일 전이다.
이런 배경에 고의사고 정황에 따라 검찰은 아내 앞으로 든 보험금을 타 내연녀와 결혼하기 위해 교통사고를 냈다고 보고 살인 등 혐의로 정씨를 기소했다. 하지만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강을환)는 15일 정씨가 운전 중 전방 주시를 게을리한 혐의(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만 인정,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씨 부부의 불화, 보험 가입 등으로 유죄가 의심되더라도 증명력 있는 증거가 없다"며 "정씨가 고의로 사고를 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운전자가 조수석에 주된 충격이 가도록 핸들을 조작했고, 벽에 부딪히기 전 피할 수 있었으나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사고 감정 결과에 대해서도 "해당 보험사로부터 의뢰 받은 감정사들이 내놓은 결과인데다 사고 발생일로부터 두 달 이상 지난 후 감정했기 때문에 객관적 중립성, 과학적 합리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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