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호'가 열사의 땅에서 난파했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은 15일 베이루트 스포츠시티 경기장에서 열린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B조 5차전 원정 경기에서 레바논에 1-2로 패배했다. 충격적인 결과다. '베이루트 쇼크'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간판 스트라이커 박주영(26ㆍ아스널)이 경고 누적으로 결장했고, 중원의 핵 기성용(22ㆍ셀틱)이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그라운드 사정은 열악했고 4만여 명을 헤아리는 레바논 관중들이 요란스런 응원전을 펼쳤다. 그러나 이런 핸디캡도 패배의 변명이 될 수 없다. 레바논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46위에 불과하다. 이 경기 전까지 역대 전적에서 한국은 6승 1무의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지난 9월 고양에서 열린 브라질 월드컵 3차 예선 1차전에서는 6-0의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한국은 이날 레바논을 상대로 90분 내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조 감독의 실험적인 용병술은 결국 처참한 실패로 귀결됐다. 조 감독은 한 번도 가동한 적 없는 베스트 11으로 레바논전에 나섰다. 이근호(26ㆍ감바 오사카)가 최전방에 나섰고 이승기(23ㆍ광주)와 서정진(22ㆍ전북)이 좌우 날개, 손흥민(19ㆍ함부르크)이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2선 공격진을 구성했다. 구자철(22ㆍ볼프스부르크)과 홍정호(22ㆍ제주)가 중앙 미드필더 조합으로 배치됐다.
전열을 채 가다듬기도 전에 선제골을 얻어 맞고 우왕좌왕했다. 전반 5분 프리킥 기회에서 로다 안타르의 슈팅이 수비수를 맞고 나온 것을 알 사디가 오른발 슛으로 마무리했다. 한국은 전반 20분 구자철의 페널티킥 동점골로 한숨을 돌리는 듯 했지만 레바논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2개월 전에 무기력하게 여섯 골을 허용하며 무너진 팀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게 한국을 압박했다.
한국은 결국 전반 31분 압바스 아트위에게 페널티킥 역전골을 허용했다. 구자철의 어이 없는 플레이가 화근이 됐다. 구자철은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곽태휘(30ㆍ울산)를 앞에 두고 돌파를 시도하던 마흐무드 엘 알리의 뒤쪽에서 파울을 범했고 주심은 지체 없이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전반을 1-2로 마치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조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손흥민 대신 지동원(20ㆍ전남)을, 후반 7분 서정진 대신 남태희(20ㆍ발랑시엔)를 투입하며 반전을 노렸지만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레바논이 더욱 거세게 한국을 몰아 붙였고 후반 20분 안타르의 슈팅이 골포스트를 때리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한국은 이날 패배로 3승1무1패(승점 10)를 기록, 레바논과 동률을 이뤘지만 골 득실에서 앞서며 조 1위를 지켰다. 그러나 충격적인 패배로 '조광래호'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한국은 내년 2월 29일 쿠웨이트를 홈으로 불러 들여 3차 예선 최종전을 치른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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