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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밤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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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밤 지하철

입력
2011.11.1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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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지하철

캐사 폴릿

정신병동 근무교대를 마치고 나온 간호사

<포스트> 지를 앞에 놓고 졸고 있다 놀랍도록 매끈한 다리가

하얀 간호사 스타킹 밑에서 은은히 빛난다

그리고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십대들, 타임스 스퀘어에서 가진

진한 데이트로 달아올라 꼭 엉겨붙어 있다 머리칼을 물들인 소녀

카메라점에서 퇴근한 하시드 교도, 기도서를 놓고

이름 없는 신의 이름을 웅얼거리며

떨어져 앉아 혹시 여자 몸이 닿을까

옷자락이라도 닿지 않을까 조마거린다

창밖을 내다보느라 좌석에서 꿈질거리고 있는 사내아이

창밖에선 신호등 불빛이 용들의 눈처럼 희번덕거리고

아이의 어머니는 담배를 피고 있다, 뻑뻑 빨아댈 때마다

남자란 다 소용없어, 못하는 말이나 있어야지라고 하는 듯

어찌 크세르크세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랴

번쩍이는 갑옷으로 무장하고 창끝을 햇빛에 번득이는

수천의 병사를 열병하면서 백년 후에는 이들 가운데

아무도 살아 있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그는 울었다

오 저 위에 잠들어 있는 이들이여, 달빛에

흥겨워하는 강물, 달 위를 지나가는 구름이여

* * *

석간 신문을 읽다 잠든 간호사. 풋사랑을 속삭이느라 정신없는 젊은 아이들. 들큰한 삶의 냄새를 묻히고 싶지 않아 움츠리는 유대교도. 신세 한탄에 여념 없는 애 딸린 여인. 뉴욕의 밤 지하철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아요. 시인은 그들을 물끄러미 보다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를 떠올립니다. 500만 군사를 이끌고 그리스 원정에 나선 절대 막강 권력. 그는 어느 날 열병식에서 울고 맙니다. "이 전쟁에서 내가 전부 이겨도 백 년 뒤면 저 녀석들 중 한 명도 살아있지 않잖아!" 그러게요. 달빛 아래의 삶이 아무리 노곤해도 구름처럼 지나가는 거네요. 그 도저한 허무에 권력자는 울었지만, 우리는 오늘밤도 담담하게 지하철을 타러 갑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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