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일본 축구가 평양에서 좌초했다.
일본 축구는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월드컵 이후 A매치 18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벌이며 순항을 거듭했다.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격침하는 파란을 일으켰고, 1월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는 정상에 올랐다. 8월 삿포로에서 열린 친선 경기에서는 숙적 한국에 0-3 패배의 수모를 안겨주기도 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C조에서도 4경기 만에(3승1무) 최종 예선 진출을 조기 확정했다.
그러나 일본은 22년 만에 나선 평양 원정 경기에서 북한 축구의 매운 맛을 톡톡히 보며 패전의 고배를 들었다.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이 이끄는 일본 축구 대표팀은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북한과의 브라질 월드컵 3차 예선 C조 5차전 원정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일본은 북한전에서 베스트 전력을 가동하지 못했다.'캡틴'혼다 게이스케(CSKA 모스크바)가 무릎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했고, 에이스 가가와 신지(도르트문트)는 벤치를 지켰다. 오카자키 신지(슈투트가르트)가 공격을 이끌고 하세베 마코토(볼프스부르크)가 미드필드에서 공수를 조율한 일본은 북한의 공세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유럽에서 활약하는 정대세(보훔)와 박광룡(바젤)을 앞세운 북한은 특유의 수비 지향적인 모습을 버리고 거친 몸싸움을 펼치며 강공 전술로 일본을 당황시켰다. 경기 전 '절대로 안방에서 일본에 질 수는 없다'고 각오를 다진 북한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무서운 투혼을 불살랐다. 경기장 분위기도 일본이 압도당하기에 충분했다. 스탠드를 붉게 물들인 북한 관중은 경기 내내 열광적인 응원을 펼쳤고'조선 이겨라'는 응원 문구를 만드는 대형 카드 섹션으로 일본의 기를 꺾었다.
일본은 전반 초반부터 북한 선수들의 육탄전에 그라운드에 나뒹굴었고 전반 막판에는 쏟아지는 북한의 슈팅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결정적인 기회를 마무리 짓지 못한 채 하프 타임을 맞은 북한은 후반 5분 일본 골문을 여는데 성공했다. 상대 미드필드에서 얻은 프리킥 찬스에서 문전으로 길게 크로스를 올렸고 박광룡의 헤딩 패스를 박남철(26ㆍ4.25체육단)이 골지역 왼쪽에서 헤딩으로 마무리했다.
북한은 후반 30분 정일관의 퇴장으로 수세에 몰렸고 일본은 하베나르(반포레 고후), 리 다다나리(히로시마 산프레체)를 투입해 승부수를 띄웠지만 만회골을 얻지 못했다. 북한과의 역대 전적에서 7승4무6패를 기록한 일본은 4차례 원정 경기에서 2무 2패에 단 한 골도 얻지 못하는 지독한 '평양 징크스'를 실감했다. 일본은 앞서 1989년 6월 평양에서 열린 이탈리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경기에서도 0-2로 완패했다. 이로써 일본은 3승1무1패가 됐고, 2승3패를 기록한 북한은 최종예선 진출이 좌절됐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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