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고교 다양화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해 온 자율형사립고(자율고) 제도는 무소신 행정의 전형으로 꼽힌다. 교육부는 2012년까지 전국에 100개의 자율고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으로 자율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자율고 정책은 고교 교육의 다양성을 살려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고 경쟁을 통해 하향 평준화로 인한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방지하면서 공교육의 질을 높여 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출발했다. 하지만 그렇지만 자율고 정책은 제대로 순항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첫째, 자율권이 없는 '무늬만 자율고'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자율고가 본래의 취지대로 운영되려면 학생 선발권을 비롯해 교육과정 운영, 인사 및 재정 운영 등 측면에서 자율권이 철저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반대쪽의 비판을 지나치게 의식해 자율고 선발 방식을 내신 50% 이내 지원자를 상대로 한 추첨 방식으로 결정했다. 자율고의 학생 선발권을 제한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당초 면접이나 서류 전형 등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방침을 추첨 방식으로 바꿔 정부 스스로 자율고 정책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이에 따른 반발과 비판이 일자 서울 지역은 추첨제를 유지하고 나머지 지역은 자기주도형 학습 전형으로 선발 방식을 변경했으나 변죽만 울린 꼴이다. 일반고 보다 3배나 비싼 학비를 내고 일반고와 별반 차이가 없는 자율고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인기를 끌 리가 없다.
둘째,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비판이다. 지난해 12월 초 서울 지역 26개 자율고 중 13곳이 정원을 채우지 못했고, 같은 해 12월 17일 추가 모집에서도 13곳 중 9곳이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전국적으로 51개 자율고 중 14곳이 무더기 미달사태를 빚게 되었다. 그러자 급기야는 서울의 용문고가 자율고 중 처음으로 일반고 복귀 결정을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했다. 당시 용문고는 추가모집을 했음에도 모집 정원 455명 중 158명밖에 충원되지 않자 일반고 복귀를 결정한 것이다. 이 결정은 우여곡절 끝에 없던 일이 되긴 했으나, 자율고 정책의 난맥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자율권 없는 자율고 정책으로 학생과 학부모는 외면하고 있는데 100개교 양성이라는 외형적 목표치에 집착하다 보니 수급의 불균형이 더더욱 생기게 된 것이다. 옥석을 가릴 줄 아는 행정의 지혜가 아쉽다.
셋째, 눈치 보기 행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눈치 저 눈치 다보다 보니 자율고가 기형아 아닌 기형아가 되고 있다. 정부가 자신의 철학과 이념에 따라 추진한 기본 정책을 소신을 가지고 추진할 의지와 능력이 없으면 그러한 정책은 접는 것이 차라리 낫다. 생색만 내봤자 학생과 학부모에게 혼란과 불신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자율 흉내만 내고 있는 자율고 확대정책은 전면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 하향 평준화를 막기 위해서 내놓은 정책이 무소신 행정 탓에 평준화의 틀 속에 가둬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교육부는 귀족학교, 사교육 유발, 평준화 해체라는 반대파들의 비판 앞에서 자율권을 둘러싸고 오락가락 하면서 근원적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생 선발 방법을 둘러싼 진보 교육감과 자율고 사이의 갈등이라는 돌출 변인을 만나 이 달 초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지만, 사안의 본질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이 눈치 저 눈치 다 보면서 무소신으로 안주하다가 예상치 못한 쓰나미에 흔적도 없이 쓸려나갈 것 같아 자율고의 미래가 왠지 불안하기만 하다.
남경희 서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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