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matrix)'를 공식 조직으로 두지 않겠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11일 이렇게 공언했다. "자칫 의견 통합이 안 돼 혼란스럽거나 조직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 회장은 "필요하면 (은행과 증권이) 사안별로 시너지를 위해 협조하는 방식으로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한때 대세로 여겨지던 국내 금융지주회사들의 매트릭스 조직 도입 움직임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다. 매트릭스 조직은 은행ㆍ증권 등 자회사들의 유사 업무를 사업부문으로 묶어 각 부문장이 이를 총괄토록 하는 혁신적 조직체계다. 각 자회사가 중심이 되는 종적 체제에 부문별 횡적 조직을 교직시켜 계열사 간 상승효과 극대화를 노리는 것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사 가운데 하나금융지주를 제외한 나머지 금융지주사 3곳은 현재 매트릭스 조직의 도입을 아예 고려치 않거나 부분 도입만을 검토하고 있다. 하나금융은 2008년 개인금융, 기업금융, 자산관리 등 부문별 '비즈니스 유닛'(BU)을 도입, 전면적인 매트릭스 조직으로의 변신을 꾀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두드러진 성과가 없어 성공으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 업계의 전반적 평가다.
신한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는 현재 부분 도입을 추진 중이다. 신한금융은 내년 1월 프라이빗뱅킹ㆍ자산관리(PBㆍWM)와 기업ㆍ투자금융(CIB) 부문만 분리해 한정적으로 매트릭스 조직을 운용할 계획이다. 우리금융도 내년 중 기업금융과 PB 등 은행ㆍ증권 등 업권 간 시너지가 요구되는 부분에만 수평적 조직을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KB금융은 국내에서 검증도 안 된 시스템을 무리하게 도입하진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금융지주사들이 매트릭스 조직 도입에 대해 부정적으로 선회한 것은 내부반발 등 부작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금융의 경우 사측은 계열사 간 시너지효과를 창출하기 위해 지주사를 설립했던 취지를 강조하며 메트릭스 조직 도입을 추진 중이지만, 우리은행 노동조합은 "법인장ㆍ부문장에 대한 중복 보고 등 외려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지주사 회장이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키울 목적으로 강행하려 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국내 금융지주사들이 매트릭스 조직을 채택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라는 게 전문가들 예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비중이 압도적인 국내 금융지주사들의 구조 상 매트릭스 조직 도입 시도는 지주사 회장과 행장의 갈등 소지를 안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조직 내 충성도는 높지만 조직 간 수평적 교류는 힘겨워 하는 한국 특유의 조직 문화도 매트릭스 조직 도입의 큰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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