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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1996년, 그리고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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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1996년, 그리고 2011년

입력
2011.11.1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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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건과 실력을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자본시장을 열었다간 단기투기자금(핫머니)의 급격한 유출입 등으로 멕시코처럼 외환위기를 당할 수 있다."

15년 전과 거짓말처럼 같은 상황

1996년 김영삼 정부가 '선진국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위해 금융개방 등을 밀어붙일 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와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반대 목소리를 냈다. 94년 OECD에 들어간 멕시코가 가입조건 충족을 위해 과도한 개방을 했다가 1년도 안 돼 외환위기로 고꾸라진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정부와 관변 경제학자들은 "우리는 멕시코와 다르다"고 묵살했다. 나아가 "국제규범을 들여와 우리의 제도와 관행을 획기적으로 고쳐야 빨리 선진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요 언론은 정부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썼고, 반대 목소리를 실어준 신문방송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 해 말 한국은 '소원대로' OECD회원국이 됐다. 그러나 바로 이듬해, 국가부도 직전까지 가는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위기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과도한 금융개방이 촉매가 된 것은 분명했다. 줄줄이 간판을 내린 기업들, 문 닫은 가게들, 거리로 쫓겨 난 실직자들, 보육원이나 친척집으로 보내진 아이들, 노숙자가 된 가장들. 그 때의 충격과 고통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2011년 11월, 15년 전의 낡은 필름이 돌아가는 것 같은 풍경이다. 진보적 시민단체와 야당들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하면 정책주권이 제한되고, 농어촌이 무너지고, 양극화 심화로 국민의 삶이 피폐해질 것"이라며 '비준 반대'를 외치고 있다. 반면 정부여당과 일부 전문가들은 또 한 번 "시장을 활짝 열고 선진국의 규범에 맞춰 정책을 합리화해야 세계화된 경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상당수 언론들이 정부의 주장을 받아쓰고 있는 것도 당시와 비슷하다. 다만 이번에는 시민사회와 야당, 진보 언론 등의 반대와 저항이 훨씬 질기고 강력하다는 차이가 있다.

조금만 주의해서, 편견 없이 양쪽의 주장을 대조해 보면 '한미 FTA가 줄 수 있는 이익은 막연하고, 그 부작용과 폐해는 뚜렷하다'는 지적을 이해할 수 있다. 자동차 전자 등 우리 대기업들이 경쟁력을 갖는 수출 분야에서 약간의 관세인하 효과가 예상되지만 이미 현지생산이 많은 구조에서 그리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향후 10년간 5% 이상의 국내총생산(GDP)증가, 35만개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국책연구소 전망은 지난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의 경제적 효과가 수십조, 수백조 원이라고 했던 보고서들만큼이나 근거가 허약해 보인다. 반면 농산물 개방으로 인한 농어촌 피해와 의약품의 '특허- 허가연계'등으로 인한 약값 상승 등 일부 산업과 소비자 손실은 정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 양극화 해소와 저출산고령화 대처를 위해 중소기업지원이나 복지 정책을 강화해야 할 정부가 투자자-국가소송제(ISD)로 발목을 잡혀 꼼짝 못할 가능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2000년 이후 미국 기업들의 ISD 활용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는데, '가장 폭넓은 개방'을 '가장 호전적인 국가'에 약속하면서 '강력한 ISD'를 도입한 한미 FTA의 후유증을 과연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미래에 독 되는 조항 먼저 고쳐야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실수를 보고 깨닫고, 평범한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통해 배우며, 어리석은 사람은 거듭된 실수에도 고치지 못한다고 한다. 15년 전 멕시코의 실패에서 배우는 '지혜'는 갖지 못했지만 직접 외환위기까지 겪고도 무리한 개방의 폐해를 경계하지 않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한다. 미국은 두 번이나 재협상을 요구해 협정문을 고쳤는데, 왜 우리는 일방적으로 끌려 다녀야 하나? 우리의 미래에 '독'이 될 조항들을 고칠 수 없다면 한미 FTA는 폐기하는 것이 옳다.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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