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 14일 SK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와 관련해 준법지원인 제도의 확대 시행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서울변회는 성명에서 "최근 SK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에서 보듯 우리 기업들이 불법행위와 경영투명성 부족으로 외국 투자자들로부터 저평가를 받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런 논리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별로 연관성이 없는 걸 갖다 붙인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들 입을 모으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법조인들이 아직 유ㆍ무죄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예단을 갖고 언급한 것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준법지원인 제도와 SK비자금 의혹 수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관되는지, 준법지원인이 있으면 대기업 총수나 그 일가의 불법행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사실 대부분 기업에는 이미 감사와 사외이사, 이사회 등 다양한 내부통제장치를 두고 있다. 제도운영이 잘못되어서이지, 제도 자체가 없어 비리가 생긴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마당에 마치 준법지원인만 두면 경영상 위법이 예방될 것이라는 법조계의 논리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준법지원인은 이미 출발 때부터 논란을 빚었던 제도다. 기업의 준법경영과 사회적 책임강화를 위해 법률가 또는 법률지식이 있는 사람을 준법지원인으로 임명하자는 내용의 상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아직 그 범위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지 않아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기업에선 준법지원인 신설이 결국은 '법조인들의 자리 만들기'로 해석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더구나 자산 500억원 이상의 상장사는 말할 것도 없고, 공시의무 위배나 임직원이 형사상 처벌이나 행정제재를 받은 전력이 일종의 '전과기업'은 자산규모와 상관없이 준법지원인을 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내년부터 쏟아지는 로스쿨 졸업생을 감안해 변호사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려는 '꼼수'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기업가치와 투자자 보호를 위해, 오너나 경영진에 대한 견제감시장치는 둬야 한다. 하지만 새 제도를 만들기 앞서, 기존 제도를 충분히 강화하는 게 먼저다. 뭐든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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