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28)씨는 최근 꿈에 그리던 증권사 최종면접에서 떨어졌다. "오랜 목표라 죽도록 공부했어요. 자격증이다 뭐다 해서 돈이 많이 들어갔고, 할 수없이 제2금융권에서 학자금대출도 받았습니다." 짬짬이 아르바이트도 해봤지만, 빚은 좀체 줄지 않았다. 그래도 소원을 이루면 모두 갚으리라는 희망에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오는 듯했다. 모 증권사 1차와 2차 시험에 모두 붙었다. 드디어 최종면접. 최선을 다해 준비했건만 면접관은 A씨의 포부나 경력엔 별 관심이 없었다. "빚이 있던데. 고객 돈을 관리하려면… 신용이 좀…." 에두른 질문에 A씨는 할 말을 잃었다. 회사는 그의 대출내역을 샅샅이 알고 있었다.
"일부러 빚쟁이가 된 게 아니잖아요. 공부하려고 돈을 빌렸고 누구보다 성실히 취업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고객의 돈을 손댈 수도 있는 놈' 취급이더군요." 빚 때문에 떨어진 게 아닐 거라고 자위해보지만 그날 면접관의 싸늘한 눈빛이 여전히 그를 괴롭힌다.
대학졸업을 앞둔 고모(27)씨는 대기업 합격을 자신하고 있었다. 질문에 답도 잘하고 면접관들이 호감을 보여 예감이 좋았던 데다, 인사과에 있던 선배에게서 "합격이 확실하다"는 소식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종 합격자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미리 정보를 알려줬던 선배는 "학자금대출 이자 미납 사실이 밝혀져 막판에 탈락했다"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는 "유흥비나 나쁜 용도로 돈을 빌린 것도 아니고 어려운 형편 탓에 이자 몇 번 미뤘던 것인데,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학자금대출이 취업을 가로막고 있다.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단지 대출을 받았거나 이자가 조금 밀렸다는 이유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는 기업이 많은 것이다. 그간 빚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힘쓰느라 취업준비가 부족하다는 게 일반적인 가정이었다. 이는 개인이 노력하면 얼마든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그러나 현실에선 학자금대출이 '끊을 수 있는 족쇄'가 아니라 '지울 수 없는 낙인'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실제 웬만한 기업들은 입사지원서를 받을 때 신용조회 동의서를 함께 받는다. 단순 참고용이 아니다. 한 대형건설사의 전직 임원은 "최종면접 후 신용조회를 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대출이나 연체가 있으면 재고대상이 된다"고 털어놓았다. 은행권 인사담당자도 "요즘은 쟁쟁한 지원자가 워낙 많기 때문에 비록 학자금대출이라도 빚이 있다면 아무래도 합격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온라인에도 예비취업자들의 슬픈 사연이 넘친다. "학자금대출로 4대 보험이 되는 곳은 취업이 불가능하단다. 대학 내내 죽어라 '알바' 하고, 졸업하니 사회적 기회가 없다", "학자금대출 소액 이자 미납으로 나도 모르게 채무불이행자가 돼 교수 임용 마지막 관문에서 떨어졌다" 등이다.
현재 300만 대학생 중 3분의 1 정도가 장학재단과 제2금융권에서 학자금대출을 받은 걸로 추정된다. 그들은 묻는다. "친구들은 빚을 갚으러 룸살롱이나 다단계로 빠지고, 선배들은 취업 문턱에서 오랜 꿈을 접는 게 현실입니다. 빚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 수 있을까요."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이윤경(한국외대 중국어과 4) 인턴기자
김시정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