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전투를 위해 잠시 휴전상태에 들어간 걸까. 아니면 전쟁 대신 타협수순으로 가고 있는 걸까.
일촉즉발의 난타전으로 치닫던 삼성전자와 애플 간 특허전쟁이 한 달째 소강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소송을 내면 맞소송을 내고 다른 지역 법원에 또 소송을 내던 양사는 지난 달 중순 이후 추가소송도 제기하지 않고, 공개적 비난도 자제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IT업계의 고위인사들은 잇따라 "결국은 타협으로 갈 것"이란 발언을 쏟아내고 있어,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전쟁에 변화기류가 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실 양 사의 특허전쟁은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정점으로 향해 갔다. 먼저 싸움을 걸며 공세를 주도했던 쪽은 애플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삼성전자는 반격도 거세졌다. 특히 아이폰4S가 공개된 10월 초 이후 삼성전자는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호주 등 4개국 법원에 판매금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하며 대응수위를 높여갔다. 신종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이 "당한 만큼 갚아주겠다"고 말하는 등 강경 발언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넥서스' '갤럭시 노트'등 애플을 자극할 만한 새로운 상품들을 잇따라 내놓았지만, 애플은 아직까지 별다른 특허소송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아이폰4S소송을 4개국 법원에 낸 이후, 어디에서도 추가적인 판매금지 가처분소송이나 특허관련 소송은 내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업계에선 "이제 소송전쟁은 정점을 지난 것 아니냐" "양 사의 전략이 전쟁에서 협상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쏟아지고 있는 상태다.
글로벌 IT업계의 고위인사들도 양 사의 협상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지난 주 방한했던 제이 엘리엇 전 애플 수석부사장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상황은 삼성과 애플 양사 모두에 해로운(detrimental) 상황인 만큼 잘 마무리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 애플창업주로부터 '나의 왼팔'로 불리며 지금도 애플 내부 사정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결국 지적재산권을 상호 공유하는 크로스라이선스 방식으로 접점을 찾게 될 것"이란 구체적 전망까지 내놓았다.
미 IT특허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인 브레드 스미스 마이크로소프트(MS) 수석부사장 겸 최고법무책임자도 지난 10일 방한 강연에서 "특허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하지 않고선 양 사 모두 새로운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삼성전자와 애플은 결국 크로스라이선스 협약으로 화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실 이번 특허전쟁은 법적 공방을 넘어 감정적 골까지 패이면서 양사 모두에게 원치 않는 상황으로까지 번진 게 사실. 각국 법원의 판결 역시 한쪽의 일방적 승리 없이 일진일퇴 로 전개돼, 어느 쪽도 완승을 기대하긴 힘들다. 때문에 즉각 소송 취하는 어렵더라도, 또 당분간 법정대결은 계속되더라도, 더 이상의 추가소송이나 비난발언은 없을 것이며 서서히 종전(終戰)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란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공교롭게도 양 사가 자제모드로 전환된 건 지난 달 16~17일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스티브 잡스 추도식에 참석한 뒤 팀 쿡 애플CEO와 면담하고 귀국한 다음부터다. 당시 이 사장은 "부품공급 등에 대한 얘기만 했다"고 밝혔지만, 면담 이후 전개상황을 반추해보면 그 자리에서 모종의 타협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에 충분해 보인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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