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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문화의 한류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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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문화의 한류가 필요한 이유

입력
2011.11.1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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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가을이 되면 노벨문학상에 대한 기대로 세계의 문화계가 술렁인다. 우리도 몇 년째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있는 시인 고은씨의 수상에 대한 기대감에 휩싸였지만 2011년 노벨문학상은 스웨덴의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에게 돌아갔다. 작년 페루의 마리오 바르가스가 수상했을 때만해도 다음은 우리 차례라는 기대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이것을 국내의 여론은 '역시 노벨문학상은 유럽 편향을 못 벗어난다.'고 비난한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아마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이웃나라인 일본은 1969년 가와바타 야스나리, 94년 오에 겐지브로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심지어 우리가 흔히 미개하다고 생각하는 아프리카도 84년 나이지리아의 올레 소잉카 등 4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를 보면 스웨덴 한림원이 항상 유럽 편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 듯싶다.

이미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오른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신작 '1Q84'의 영문 번역판이 출판되었다. 누가 번역했나 싶어 유심히 보니 제이 루빈과 필립가브리엘이 번역자로 소개되어 있다. 루빈교수는 시카고대에서 일문학을 전공한 하버드대 교수로 일본 문학에 대해 세계적인 권위자로 잘 알려져 있다. 가브리엘 교수는 미 애리조나대 동아시학과의 학과장을 맡고 있을 뿐 아니라 겐지브로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한 것으로 유명하다. 좀 더 관심을 갖고 조사를 해보니 하루키의 작품은 대부분 루빈 교수나 가브리엘 교수가 번역을 한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하루키가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면에는 세계 최고의 번역가가 그의 작품을 영어로 옮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키의 작품을 영미의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기위해서는 작가도 물론 세련된 국제적인 감각을 갖고 있어야 하겠지만 영미의 문화적 사회적 배경에 잘 맞게 번역하는 일 또한 아주 중요하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부터 세계 문학 철학 과학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고, 최고의 학자나 전문가가 번역 작업에 종사해왔으며 이들은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어떤 작품에 대해 한 사람이 번역하면 다른 사람은 번역하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번역은 거의 졸속으로 진행된다. 몇 년 전 해리포터를 쓴 조안 롤랑의 '불의 잔'의 번역본을 보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Cedric을 '세드릭'으로 읽어야 맞는 데 책에서는 온통 '캐디락'으로 번역한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던 기억이 난다. 가장 중요한 주인공의 이름조차 틀린 채 번역본이 나오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한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외국 서적이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이 이 정도일 텐데 우리 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과정도 일본과 비교하면 아쉬운 점이 많을 듯싶다. 세계 최고의 전문가가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아마 많은 비용이 필요할 것이고 대부분의 출판사가 영세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실정에선 어느 정도 정부의 지원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케이 팝과 한국의 드라마가 감각적인 면이나마 한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한류를 만드는 것 또한 긴 안목에서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안도열 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 공학부 우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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