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화, 그림에 새긴 선비의 정신/강행원 지음/한길아트 발행·384쪽·2만5,000원
특정 분야가 철학의 부재로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역사적 발전 과정을 되돌아보며 필연성을 확보하는 정체성의 점검이 우선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문인화, 그림에 새긴 선비의 정신> 은 이 같은 고민에서 출발한다. 화가이자 미대 강사인 저자가 한국화의 몰락을 걱정하며 선대 화가들의 작품과 그 안에 담긴 시대정신을 되짚어 본 책이다. 한국문인화,>
저자는 우선 동양화나 한국화로 불리는 전통 회화를 문인들이 주체였다는 태생적 배경을 들어 문인화로 규정한다. 그림을 생업으로 삼지 않았던 문인들의 그림인 문인화는 도가와 유가 사상을 기반으로 계급성을 띠고 출발해 문인 사대부의 여기(餘技)로 발전했다.
책은 시대별 문인화의 미학적 차별성을, 이를 이끌어 온 인물들의 사상적 특징과 연계해 조명한다. 예컨대 왜란과 호란의 시련과 함께 당쟁이 계속돼 정치와 사회가 불안정했던 조선 중기의 문인 화가들은 불안한 시국을 극복하기 위한 의기 표출로서 수묵을 즐겨 다뤘다. 번잡을 피하고 의연함을 담아내기 위해 재료를 단순화하면서도 비교적 접근이 용이한 수묵 주종의 화목을 택했다는 이야기다.
조선후기 실학이 대두하면서부터는 삶에 밀착해 일상을 묘사한 문인화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신문물에 눈을 뜨면서 중국 문예를 흠모해 맹목적인 추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화풍도 등장하게 됐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중국 화풍을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만의 회화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이론적인 연구가 전무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결국 저자는 추사 김정희로 대표되는 실학자의 예술관과 일제 강점기 이후 신격화돼 온 그들의 영향이 현대 한국 회화의 근본과 철학이 공허해진 요인이 된 셈이라고 강조한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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