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저가화장품 업계에서 '영업의 달인''마케팅의 귀재'로 불리는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주)토니모리 김중천(43) 대표가 주인공이다. 1만원대 미만의 제품들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저가 화장품 브랜드샵 시장에서 놀라운 성공스토리를 쓰고 있기 때문. 그는 2008년 빚이 매출(100억원)만큼 많던, 한마디로 망해가는 부실 덩어리 회사였던 토니모리에 마케팅본부 상무로 스카우트 됐다. 그로부터 2년 뒤 사장으로 승진, 취임해 1년 만에 빚은 몽땅 갚고, 매출은 10배 이상 늘려 1,000억대의 거대 우량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토니모리는 올해 1,700억원대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면세점 한 곳에서만 최근 한 달 간 6억3,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이 같은 극적 반전에는 토종 화장품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김 대표 특유의 '소통 경영'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의 하루는 매장을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현재 전국에 280여개 매장을 직접 돌며 점주들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 김 대표는"아침에 서울 강북의 집에서 출근하는 길에도 인근 토니모리 매장에 들른다"고 말했다. 하루에 10개 안팎의 매장을 돌며 현장에서 보고 느낀 분위기와 소비자들의 불만, 점주의 의견을 듣고 이를 토대로 회사에서 직원들과 개선점을 찾아 즉각 즉각 시정해준다.
김 대표가 현장과의 소통을 중시하게 된 것은 약 20년 전 '영업맨'으로 뛰던 경험 때문이다. 그는 1993년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한국도자기에서 출시한 로제화장품에 입사해 영업파트에서 일했다. 90년대는 동네에 자리잡고 있던 '종합화장품매장'이 주된 트렌드였다. 그는 매장 진열대의 한 칸을 두고 600여개의 화장품 회사와 영업 전쟁을 벌였다. 김 대표는 "당시에는 '칸 마케팅'이라고 불릴 정도로 화장품 회사들 간 진열대 싸움이 치열했는데, 승부처는 매장 주인에게 누가 잘 보이느냐에 달려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김 대표는 이 때부터 매장 주인과 소비자와의 의견을 귀담아 듣는 습관이 몸에 배었고, 이 덕분에 입사 4년 만에 20대 최연소 과장 타이틀도 달았다. 2001년에는 도도 화장품으로 자리를 옮겨 트랜스젠더 하리수를 내세워 '빨간통'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빨간 원색을 선호하는 트렌드를 겨냥한 마케팅이었는데, '빨간통 파우더'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대박을 터트렸다.
현장 중심의 영업마인드와 시장의 흐름을 읽어내는 밝은 눈을 지닌 그가 대기업과 어깨를 당당히 하며 토니모리 신화를 만들어 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현재 화장품 브랜드샵은 서울 명동을 중심으로 늘어나는 추세. 특히 국내 젊은 층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관광객들이 몰리는 명동은 격전의 현장이다. 아모레퍼시픽(에뛰드, 이니스프리)과 LG생활건강(더페이스샵) 등 대기업 점포들이 버티는 이 곳에서 토니모리는 차별화 전략으로 선전하고 있다. 이른 바 '펀(fun)'제품 전략이다. 화장품 용기를 재미있는 캐릭터 모양으로 아기자기하게 제작해 판매하는 것. 최근 출시된'과일공주 글로스'(7g)가 대표적이다. 펀 제품이 큰 인기를 끌자, 타사 브랜드에서도 따라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우리의 아이디어를 대기업에서도 벤치마킹해 판매하는 경우도 생겼다"며 "경쟁은 치열하지만 큰 보람도 느낀다"고 말했다.
저가화장품 시장이 커지면서 해외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토니모리도 지난 2008년부터 대만과 태국,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 진출했다. 조만간 아랍에미리트와 이란에 각각 1호점을 오픈할 예정. 내년에는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 등에 출점할 계획이다.
토니모리는 올해 대사를 앞두고 있다. 지난 6년간 서울 방배동에 터를 잡고 있던 임대사무실에서 조만간 신사옥으로 이전하는 일이다. 시가 80여억원에 4층짜리 건물을 사들여 리뉴얼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 7일에는 3박 4일 일정으로 직원들과 지역 매장의 점주들과 함께 홍콩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새 건물에서 새 출발하는 직원들의 사기충전을 위해서였고, 점주들과 화합도 다지는 자리였다. 그는 이를 두고 "소통의 가치를 공유하기 위한 것"라고 설명한다.
"시장 트렌드라는 건 없다고 봅니다. 이미 대세로 자리잡은 것을 보고 진입하면 이미 늦습니다. 현장과의 부지런한 소통을 통해 미리 흐름을 읽어내고 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것이 CEO의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