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의 폐 손상, 위험성 설득하는 데만 2, 3개월 걸렸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 호흡기알레르기과 홍수종(52) 교수는 가히 마징가제트다. 원인 미상의 폐 손상으로 수많은 생명이 맥없이 저 버린 가습기 살균제 사태. 그는 이 살벌한 상황 내내 우리를 온전히 수호해 내기 위해 모진 애를 썼다. '우리들을 위해서만 힘을 쓰는 착한 이/나타나면 모두모두 덜덜덜 떠네.' 어린 시절 우리를 짐짓 열광케 했던 만화 '마징가제트' 가사대로다. 돌이켜 보면 이 만화에서 악당은 항상 더럽고 치사하게 마징가제트의 허점을 노렸다. 마징가제트가 은하 반대편으로 출동하면 이때를 이용해 우리 수도를 유린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절체정명의 순간, 앗 마징가제트다. 치사한 적의 음모를 미리 간파하고 움직인 것. 홍 교수도 못지않다.
2006년과 2008년 논문을 통해 아이들이 급성 간질성폐렴이라는 원인 불명의 병으로 죽어간다고 경고했던 것이다. 그리고 절정의 순간, 마징가제트가 적에게 로케트 펀치로 최후의 일격을 가하듯 홍 교수도 로케트 펀치를 아끼지 않았다. 5월 10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산모가 숨지자(이미 소아 사망자가 많다는 것을 홍 교수가 논문에서 밝혔지만 당시엔 몰라 모두 첫 사망자라고 생각했다) 홍 교수는 2006년과 2008년 논문에서 보고했던 소아들과 같은 병이라는 것을 바로 알았다. 소아에게도 병이 생기니 산모에게 특정되는 질환이 아닌 폭넓은 층에서 발생하는 위험한 병이었다. 당시만 해도 온 세상은 이 병을 그저 그런 질병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다. '산모들만 걸리는 뭔 병이 있나 보다.' 질병관리본부도 사태 이후 산모 케이스만 조사했다.
그래서 그는 바로 질병관리본부에 자신의 논문 내용을 얘기했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늘 그렇듯 반응은 무척이나 데면데면했다. 하지만 2, 3개월의 끈질기고 집요한 그의 설득에 결국은 감을 잡고 사태 해결에 나섰다. 이뿐 아니다. 병이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단서도 제공했다.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자 종결자인 그를 만나 깊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_두 논문의 내용이 관심이다. 먼저 2006년 논문부터 설명해 달라.
"2006년 초 내가 진료하던 아이들이 계속 목숨을 잃었다. 어떤 치료를 해도 듣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소아청소년과가 있는 다른 병원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서울대병원에서도 비슷한 환자가 있다는 얘기가 돌아왔다. 그래서 내 케이스 12명, 서울대병원 케이스 3명를 모아 '2006년 초에 유행한 소아 급성 간질성폐렴'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만들었다. 공저자 15명 중 하나인 부산대병원 전종근 교수의 박사 학위 논문 형식이었지만 대한소아과학회에도 보고했다. 두 병원에서 15명 중 7명이 사망했고, 환자 나이는 평균 26개월이었다. 폐 섬유화 등 증상에 주목해 급성 간질성폐렴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_2008년 논문은 어떤 내용이었나.
"2006년 첫 논문이 나온 이후 해마다 소아과학회에 보고했는데 그때마다 계속 이런 환자 얘기가 전해졌다. 그래서 2008년 8월 대한알레르기소아호흡기학회를 통해 전국의 병원에 메일로 설문을 돌렸다. 병의 양상과 사진 등을 넣고 발병 케이스를 요청했다. 내가 서울아산병원에서 확인한 것과 2주일 간 각 병원에서 들어온 걸 합쳐 나온 숫자가 2008년 7월까지 78명이었다. 사망자는 36명. 나이는 첫 논문 때와 마찬가지로 26개월이었다. 특히 전국 모든 지역의 병원에서 사례가 관찰됐다. 서울이 45명 발생에 25명 사망으로 가장 많았으나 이것은 서울의 병원 수가 많기 때문이었다. 물론 설문에 응한 의사들이 병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없어 모두 정확한 사례를 모았다고 자신할 수는 없었지만 소아 사이에서 병이 전국적으로 만연하고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 의미 있는 숫자라는 판단에서 9명 공저로 '급성 간질성폐렴의 전국적 현황 조사'라는 제목의 논문을 냈다."
_두 논문에서 발병 원인은 무엇으로 보았나.
"2006년에는 서울아산병원 자체적으로, 2008년에는 공저자인 당시 질병관리본부 강춘 인플루엔자바이러스팀장에게 의뢰해 환자들을 조사했다. 원래 급성 간질성폐렴에서 잘 나오는 휴먼코로나바이러스에 집중했는데 각각 2명씩에서 검출되는 데 그쳤다. 바이러스도 이것만 나온 게 아니라 여러 가지가 다양하게 검출됐다. 바이러스가 아닌 다른 원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_산모만 주로 얘기되다가 소아 케이스가 대두된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나.
"이 병에 누구나 걸린다는 의미다. 원인에 노출되면 누구나 걸린다고 할 수 있다. 그전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사람들은 5월 서울아산병원의 산모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내 어린이 케이스 얘기를 듣고선 병의 계층적 일관성을 알게 됐지만 나는 사실 반대였다. 어린이 케이스가 발견된 이후 산모 케이스를 접한 것. 바로 2006년 병에 걸린 내 소아 환자를 돌보던 임신부 어머니가 대구 집에 갔다가 같은 증상으로 죽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어머니와 어린이가 같이 걸렸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못했다. 좀 안타깝다."
_지난 1일 환경보건시민센터와 민주당 전현희 의원실이 국회에서 연 토론회에선 산모 소아 이외에 일반 성인 남녀 케이스가 많다고 했다는데.
"아빠와 아들이 함께 걸리는 것도 봤다. 이뿐 아니다. 성인 남녀 케이스가 제법 축적돼 있다. 이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_산모와 다섯 살 이하 어린이 환자가 많은 것은 계층 공통 질병이란 설명과 좀 맞지 않는다.
"산모 소아는 아무래도 면역학적 약자다. 당연히 어떤 질병이든 취약하다. 또 이번에 원인으로 지목된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다. 산모는 상당수가 2, 3세 아이를 갖고 있는데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가습기를 틀어 주게 마련이다. 그러다 함께 걸리는 것이다. 6개월 미만 애들도 적은 데 이는 일정 기간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돼야 병이 발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학교 다니는 중고생 환자가 거의 없는 것은 외부 생활을 많이 해 가습기에 노출될 소지가 적다는 점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_이번 사태 초기 질병관리본부가 이 논문들에 주목했다면 좋았을 텐데.
"사실 내가 연락을 했다. 좀 황당한 표정이었다. 산모뿐 아니라 폭넓게 발병할 수 있다는 얘기를 이해를 못했다. 그래서 이걸 맨날 설득하고 다녔다. 이해를 한 뒤에는 움직이는 게 느렸다. 한국 공무원 다 그렇지 않나. 한 2, 3개월 뒤에야 조사 대상을 확장하더라."
_후속 논문도 나오나.
"현재 준비 중이다. 케이스를 더 모아 종합판으로 낼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외국에서도 전혀 없는 케이스기 때문에 인용이 좀 될 거다."
_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란 팁도 줬다는데.
"치료받던 환자들을 상대로 병리조직검사를 해 보니까 기관지 주변에 염증이 생겼다. 원인 물질이 기관지를 통해 들어왔다는 얘기다. 결국 외부 공기가 원인이다. 이 단서를 질병관리본부에 알려줬고 이를 팁으로 가습기 살균제가 나온 것이다."
_이 병은 진단이 어려운가.
"처음엔 영락없이 가벼운 감기다. 기침을 조금 하고, 열도 별로 많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환자는 그냥 작은 병원에 가고, 의사도 대충 넘어가게 된다. 그런데 감기가 1, 2주일 지나면 사라지는 것과 달리 증상이 계속 좋아지지 않는다. 그러다 쌕쌕 숨을 크게 쉰다. 호흡 곤란 때문이다. 호흡이 어려워지면서 밥도 못 먹게 된다. 이때가 되면 의사들도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는데 나타나는 것이 불분명하다. 그래서 그냥 넘어갔다가 어렵게 되는 경우가 많다."
_치료도 지난한 작업이다.
"염증을 막기 위해 면역억제제나 스테로이드 등 갖은 약은 다 쓴다. 하지만 근본 해결책은 못 된다. 따라서 사람들이 원인 물질에 노출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_질병관리본부가 3일 가습기 살균제가 잠정 원인이라고 발표한 뒤 11일에는 확정 발표까지 했는데 믿을 만한가.
"올 봄에만 해도 나도 이런 건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개연성이 충분하다. 가습기 살균제를 실제 사용 환경과 비슷하게 틀어 놓고 쥐에게 흡입시켜 세기관지 주변 염증과 세기관지 내 상피세포 탈락, 초기 섬유화 등 결과를 얻었고 호흡수 증가 및 호흡 곤란 증세가 나타났기 때문에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다."
_원인 물질이 어느 정도 나온 이상 발병 숫자는 좀 줄지 않을까.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을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확 줄어들 수밖에 없다."
_11일 발표에서 정부의 보상책이 빠져 있다는 이유로 시민 단체와 피해자 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국가가 관리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직접 보상하라는 것인데 현재로선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우선 이번 피해가 가습기 살균제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 100% 입증이 안 됐다. 그리고 각 피해자가 피해를 입증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국가 보상은 이런 전제가 이뤄진 후 가능해 보인다."
_이번 사태로 다른 상품의 유해성 문제도 제기되는데.
"이번에 가습기 살균제가 문제가 됐기 때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의심 물질을 다 건드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의사나 학자들이 제기하는 합리적 의혹만 검토하는 것이 옳다."
_왜 환자들이 서울아산병원으로 몰렸나.
"내가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 것이 도움이 됐다. 2, 3년 간 인터넷에서 이 병 검색하면 다 내 이야기다. 서울아산병원의 중환자실이 큰 것도 이유다."
_홍 교수가 이번에 환자를 왕창 다루면서 기술이 확 올라간 것 아닌가.
"물론이다. 과거엔 스테로이드만 썼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를 복합해서 쓴다. 어린 아이들을 잃으면서 배운 소중한 기술이다."
_앞으로 이런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전국적 질환 대비 민관 네트워크의 구성이다. 관련 의사 그룹과 보건복지부 및 질병관리본부가 리포팅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치료가 안 되는 병이나 새로운 병이 생기면 바로 보고할 수 있고 정부도 즉각 대응이 가능해진다. 사실 이번에 혼자 고함치며 돌아다녀 보니까 힘들었다. 의사 혼자는 못한다. 의사들이 합의체를 이뤄 의견을 제시하면 정부의 이해도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홍수종은 누구
홍수종 교수는 환자를 보는 임상의사지만 연구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현재는 아이들이 엄마 뱃속에서, 또 어린 시절에 겪은 어떤 환경 때문에 천식이나 아토피 같은 알레르기 질환을 얻게 되는지를 연구 중이어서 무척 기대가 된다.
부산 출신으로 동성고를 나온 그는 어릴 때부터 식물학과 생물학 마니아였다. "실험하고 인체를 해석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성적도 좋았지만 이 때문에 의사의 꿈을 키운 거죠."
그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순진무구한 어린이. "어른보다 어린이를 많이 좋아했어요. 그래서 의사가 된다면 당연히 소아청소년과 의사였어요." 결국 그는 서울대 의대를 거쳐 서울아산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돼 꿈을 이뤘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 사태 과정에서 그는 무척 힘들었다. "2006년 소아 급성 간질성폐렴을 발견하곤 처음엔 뭣도 모르고 치료했죠. 그리고 조금 알았다고 생각했고, 사망률 낮출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계속 실적이 좋아졌거든요. 그런데 올해 다시 사망률이 높아졌어요. 더 적극적으로 치료했는데도. '내 힘으로 안 되는 상황이구나' 했어요. 그런데 올해 중반 환자 중 안타까운 애가 있었어요. 의사로서 '다 고쳤구나, 힘든 시기 보내 집으로 보낼 수 있겠구나' 했는데 갑자기 죽었어요. 한달 보름 동안 환자를 보고 싶지 않았어요. 우울증이죠. 그런데 되레 보호자들이 찾아와 위로하고 환자는 밀려오고 해서 결국 탈출했죠."
소아청소년과 중에서 천식과 아토피를 전공한 것도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맞닿아 있다. "주변에 아토피와 천식 환자 다 있잖아요. 4명 중 1명이니까요. 고혈압 당뇨병 비슷하죠. 그래서 이 애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어요."
그는 2008년 '아토피 없는 서울' 사업의 일환으로 서울 지역 학생들의 알레르기질환 분포를 조사했다. 또 올해부터 2014년까지 국가표준화사업으로 전국적으로 같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사실 한국은 알레르기 질환에 대한 기초값이 없어서 외국 것을 써요. 한심한 일이죠."
그가 현재 가장 적극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는 알레르기 질환에 대한 코호트연구(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특정 질병의 발생에 관련이 있다고 보이는 특성이나 병을 일으키는 인자를 시간을 거슬러 추적해 이 요인에 노출되지 않은 집단과 비교하는 것). 보건복지부 지원을 받는데 현재 4년을 했고 앞으로 15년을 더해야 하는 사업이다. "천식이나 아토피가 병은 특정 연령에 발생해도 그 전에 생긴 거에요. 태어날 때부터, 아니 엄마 뱃속부터 환경적 요인이 있어요. 생애를 추적해 조사하면 그것이 나올 겁니다. 그러면 병이 안 걸리게 미리 막을 수 있죠."
그는 뛰어난 연구 실적 덕분에 2009년 여론조사 기관인 미디어리서치와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 수여하는 '한국의 미래를 이끌 차세대 인물 300인'에 선정됐다. 같은 해 제약 업체 MSD가 주는 SCI연구학술상도 탔다.
그의 부인은 TV에 단골손님으로 나오는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신의진(47ㆍ소아정신 전공) 교수. 같은 의사고 전공도 소아 분야여서 잘 통한다. 덕분에 그의 코호트연구에서 산모의 스트레스 부분을 돕고 있다. 첫째 아들 경모(20ㆍ미 가우처대)씨도 의사 지망생이고 보면 스포츠 잘하는 둘째 아들 정모(고1)군만 돌연변이다.
그는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연구 활동'을 묻자 "코호트연구만 완성해도 나로서는 사건"이라며 "남은 모든 걸 여기 걸 생각"이라고 했다.
선임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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