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녔다면 가을축제에 대한 추억이 한두개쯤 있을거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연극제, 문학의 밤, 방송제, 합창제, 시화전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했는데, 지금처럼 학생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뽐낼 다양한 기회가 없던데다 권위주의가 팽배하던 시절이라 가을 축제는 1년 중 거의 유일하게 학생들의 문화적 소양을 발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요즘은 유치원만 가도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공공연히 있다지만, 그때만해도 남녀학생이 빵집에만 같이 있어도 정학을 받던 때라 1년 중 유일하게 남학생, 여학생이 '합법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또 하나. 당시엔 학교마다 색깔이 있었다. 그리고 학교마다 주특기가 있었다. 누가 그 순위를 정해주는 것도 아닌데, 어느 학교 방송제엔 박원웅씨가 왔다더라, 김기덕이 왔다더라 하면서 기싸움을 펼치곤 했다.
꽁트 BG 하나에도 시샘을 하는 상황이었으니 그 자존심 경쟁이 엄청났다.
내가 다녔던 여고는 라는 가을축제가 있었는데 그 하이라이트는 마지막날 밤에 열리는 였다.
중학교 때부터 합창, 연극, 문학 등 공부보다는 그런 쪽에만 관심이 많았던 나는 고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당연한 것처럼 방송반을 지원했다.
그러자 담임이 강력하게 만류했다. 방송반에 들어가면 공부 잘하던 애들이 공부를 안 해서 대학을 잘 못간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그 대표적 예로 4년 위인 모선배를 이야기했다.(그 선배는 방송제 준비 기간에 학교에 와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었는데 어찌나 품위가 있고 세련되었는지 우리 모두 부러워하기만 했다. 결국 그 선배는 방송사 앵커가 됐고, 지금은 대표적인 여성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아무튼 나는 담임의 걱정을 뒤로하고 방송반을 지원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 지원자도 엄청 많았지만, 무슨 시험을 세 번 정도 보는 것이다. 면접을 보던 방송반 선배들이 어찌나 무서웠던지, 정말 방송반에 가야하나 겁이 덜컥 났는데 아무튼 합격은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들어와서인지 모두들 자부심이 강했다. 당시 방송반은 프로듀서-아나운서-엔지니어로 1학년 때부터 교육을 받았는데 직속 선배들은 더더욱 엄격했다.
지금은 같이 늙어가는 처지로 당시를 떠올리면 어이가 없어 웃음마저 나오지만, 당시만해도 1년 선배는 하늘이었다. 토끼띠인 우리들은 1년 선배들이 호랑이띠라 더 우리가 기를 못피는거라며 그 어린 나이에 띠 타령까지 했을 지경이다. 그래도 우리에겐 공동의 목표가 있었다. 바로 백합제의 꽃,방송제에 나간다는 것! 상상만해도 설레는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나는 프로듀서로 방송제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코너인 'DJ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 오프닝 곡 선곡에, 과장을 하자면 목숨을 걸었다. 하지만 나는 1학년 말 쯤, 이 음악을 처음 듣는 순간, 망설임없이 첫곡으로 점찍어뒀다. 세시봉파와는 다른, 조용필과도 또다른, 독특한 분위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템포. 아직도 이 노래만큼 듣자마다 나를 매혹시킨 곡은 없다. 그 노래는 바로 이치현과 벗님들의 '당신만이'였다.
조휴정ㆍKBS해피FM106.1 '즐거운 저녁길 이택림입니다'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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