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과도 연립정부를 이끌 총리에 루카스 파파데모스(64) 전 유럽중앙은행(ECB) 부총재가 지명됐다. 카를로스 파풀리아스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집권 사회당, 제1 야당인 신민당, 극우정당인 라오스 등 3개 정당 당수 및 파파데모스 전 부총재와 함께 총리 인선 회의를 가진 뒤 파파데모스 전 부총재에게 새 정부 구성을 위임했다고 AFP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과도 내각은 11일 오후 2시 출범한다.
파파데모스 지명자는 대통령궁 성명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나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아있어야 그리스의 금융이 안정될 것”이라며 “그리스가 통합돼 있는 한 미래는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총선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여야가 사전에 합의한 내년 2월 19일은 참고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3개월 간 연립정부를 이끌 파파데모스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딴 미국파 경제학자다. 1994~2002년 그리스 중앙은행 총재를 거쳐 2002년부터 작년까지 ECB 부총재를 역임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가 이끄는 과도 연정은 2차 구제금융협약 비준 및 이행, 1차 구제금융 중 6회분 확보, 민간채권단의 국채 교환 계약 이행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
이날 총리가 지명되기는 했지만 그 과정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9일 TV 생중계 연설에서 과도 연정 구성 합의를 발표하자 당장이라도 새 정부가 출범할 것 같았다. 그때만 해도 집권 사회당 출신의 필리포스 페찰니코스 국회의장이 차기 총리로 유력했다. 그러나 연설 직후 파판드레우 총리, 신민당의 안토니오 사마라스 당수, 라오스의 게오르기오스 카라차페리스 당수가 가진 3자 회동에서 카라차페리스 당수가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면서 총리 확정은 불발됐다. 파판드레우와 사마라스가 페찰니코스를 차기 총리로 추대하자 카라차페리스가 반기를 든 것이다. 페찰니코스가 파판드레우의 최측근이기 때문에 정국의 변화를 이끌 인물로는 부적합하다는 것이었다. 총리 선임이 좌절된 것을 두고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좌파연합인 시리자 소속의 알레시스 치프라스는 “폼페이 최후의 날을 보는 것 같았다”며 총리 인선 불발을 비난했다.
과도 정부 출범으로 정국의 불확실성은 어느 정도 걷혔지만 정치권의 이전투구에 국민은 크게 실망한 상태다. 로이터통신은 파판드레우 총리의 국민투표 발표 이후 시중은행에서 50억유로가 인출됐다고 보도했다. 그리스 전체 예금의 3%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이는 그리스의 유로화 탈퇴 조짐과 맞물려 정치권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의 불신을 반영하는 것이어서 전면적인 뱅크런(예금인출)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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