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는 국가정책적 차원의 논쟁을 넘어 정치적 생존게임의 성격으로 변하고 있다. 한미 FTA가 나라의 장래에 도움이 되느냐는 국익 차원의 고민보다는 어떤 행보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유리하냐는 정파적 차원의 계산이 우선시되는 흐름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는데 강행처리를 하면 거센 역풍에 좌초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그런 경험도 있다. 1996년 12월,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은 노동법을 날치기 처리한 뒤 급격하게 몰락했다. 그리고 1년 뒤 50년 보수정권이 막을 내리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다. 설령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 세력이 밀어붙이려 해도, 차기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가 쉽게 동의해 주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반대로 민주당은 지금 타협하면 지지기반으로부터 몰매를 맞을 형국이다. 사석에서 "차라리 밟고 지나가라"고 말하는 데서 날치기의 역설을 기대하는 기류마저 읽힌다. 만약 한나라당이 강행처리를 한다면, 민주당은 격렬하게 투쟁할 것이며 그 동력으로 야권통합을 이뤄내고 이 대통령, 한나라당, 박 전 대표를 하나로 묶어서 공격하는 총선ㆍ대선전략도 구사할 것이다.
이런 정치적 득실과 상대의 전략을 여야는 서로 잘 알고 있다. 한나라당이 10일 본회의를 취소하고 민주당 중도파 의원 45명이 9일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절충안을 마련한 것도 여건의 성숙을 기다리고, 국익을 위해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대목이 출구가 될 수 있다. 비록 하루 만에 꼬리를 내렸지만 민주당 중도파가 제시한 '비준 후 ISD 재협상 시작'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 실마리는 정부가 풀어야 한다. 김성한 외교부장관이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요청하면 미국 정부에 ISD 재협상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미 정부로부터 '비준 후 ISD 재협상'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지레 꼬리를 내리지 말고, 이게 풀리지 않을 경우 한미 FTA는 물론 한미동맹마저 상처를 입을 수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미국도 재협상을 통해 자동차부문의 이익을 되찾아간 바 있다. 더욱이 지난달 30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론 커크 미 무역대표는 비준 후 보완책을 논의하기 위한 '중소기업 작업반'과 '서비스ㆍ투자위원회'를 발족시키기로 합의했다. '서비스ㆍ투자위원회에서 ISD를 즉각 논의한다'는 약속을 얻어낸다면, 이는 대타협을 이뤄내는 첫 단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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