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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바로 서기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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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바로 서기 데이'

입력
2011.11.1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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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루에트 까까웨트'는 프랑스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동요다. "그의 집은 상자로 만들었어요. 계단은 종이로 만들었어요"라는 내용이다. 어느 겨울 새벽 서울역에 갔다가 동화가 아닌 현실에서 종이를 집삼아 자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지하도의 차가운 바닥에 수십 개의 장방형 종이 상자가 늘어서 있었다. 역사 안에도 노숙인들이 신문지를 덮은 채 자고 있었다. 종이 한 장으로 추위를 견뎌야 하는 노숙인들은 한해 400여 명씩 거리에서 죽어간다.

방치되는 사회적 약자들

8월부터 노숙인들은 코레일의 퇴거 조치로 더위와 추위로부터 피난처 역할을 해주던 서울역에서 쫓겨났다. 역사 밖으로 내쫓기는 노숙인들의 모습은 네덜란드 화가 보슈가 1500년경 '광인들의 배'에 묘사한 장면과 흡사하다. 중세 말 프랑스에서는 비정상인으로 분류된 사람들을 바보들의 배라고 불리는 커다란 배에 실어 망망대해로 보내 버렸다. 항해는 운명의 불확실함과 종말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는 정상인이라고 하는 집단의 사람들이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분리하고 격리하는지 분석했다. 이성의 사회에서 아름다움은 권력과 돈과 지식이며 추함은 빈곤과 치욕과 무지다. 추한 것들은 아름다운 것들을 위해서 숨겨지고 감시 받고 박해 받아야 했다.

유럽의 근대 국가들은 모뉴먼트, 광장, 미술관, 박물관, 동물원을 만들어서 국가 권력을 과시한다. 생산성을 갖춘 빈곤층은 공장에 감금하고 불순하게 간주되는 사람들은 빈민시설, 수용소, 병원, 양성소 등의 울타리에 가둔다. 불순한 사람들이 청정하고 맑은 이성의 도시를 더럽혀서는 안되었다. 비정상인들을 바보들의 배에 싣는 것만으로는 안심 할 수 없었던 근대 국가는 수용소를 만들어 그들을 격리시켰다. 우리 시대의 삼청 교육대도 그 예 중의 하나다.

4일 오후 한 노숙인이 을지로 장애인 화장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조의를 표하려고 국립중앙의료원을 찾았다. 그는 "서울역 퇴거조치와 관련해 코레일에 강력히 의견을 피력해 달라"는 노숙인 다시서기센터 관계자의 건의를 받고 서울역에 퇴거조치 재고를 요청했다. 서울시의 방침에 코레일이 불편하다. 서울역 관계자는 "지난 8월 야간 퇴거조치를 시행한 후 역사가 훨씬 깨끗해지고 구걸 등에 대한 민원도 거의 없어졌는데 이제 와서 이러면 곤란하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노숙인들의 거처를 마련하는 것은 서울시의 책임일 수도 있지만 당장 겨울인데 무조건 ?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노숙인들을 동사의 위험에 내모는 것과 같다.

오늘이 천 년에 한번 있다는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라고 한다. 두발로 데이, 가래떡 데이라고 해서 여기 저기 행사도 많다. 유통업체들은 몇 달 전부터 분위기를 띄우고 과자팔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기업 마케팅 전략으로만 11월 11일의 의미부여를 할 것이 아니라 매년 이 날을 사회적 약자들의 바로서기 데이로 정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기업들도 마케팅에만 전념하기보다는 수익의 일부를 노숙자들이 다시 설 수 있도록 나누는 사업으로 확대 한다면 11월 11일은 도덕적, 사회적 의미를 갖는 날이 될 것이다.

노숙인 다시 설 수 있도록 해야

소설가 최인호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똑바로 몸을 세우고 꼿꼿이 앉을 수만 있다면 그 간단한 행동 하나에서 정신은 균형을 잡고 영혼은 바로 서게 될 것이라고 했다.

노숙인들은 몸이 부실해서 살짝 밀기만 해도 쓰러진다고 한다. 그들은 몸도 영혼도 바로 세울 수 없는 상태다. 일 년 중 단 하루만이라도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두발로 바로 서도록 관심을 갖는 일이야 말로 11월 11일에 어울리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 시대가 추구해야 할 궁극의 아름다움이다. 바보들의 배가 다시 항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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