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노사간 잠정합의로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는 한진중공업사태는 산업 구조조정으로 앞으로도 불가피하게 맞닥뜨리게 될 정리해고 문제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하는 숙제를 남기고있다.
노조를 협상 파트너로 인정해야
1998년 현대차(정리해고 277명, 희망퇴직 8,171명), 2001년 대우차(정리해고 1,750명, 희망퇴직 6,000여명, 2001년) 등에 비하면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는 그 규모는 작았지만, 6차례에 걸친 희망버스의 부산행이 상징하듯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정리해고를 해야 할 만큼 회사의 경영상태가 악화된 상태였는지에 대해서는 노사는 물론 전문가들의 주장이 엇갈렸다.
그러나 한 기업의 정리해고가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될 정도로 악화일로를 걸은 데에는 노조를 파트너로 존중하지 않고 손쉽게 '인력감축' 카드를 꺼내든 사측의 경영방식이 결정적인 문제였다. 사측은 경영상 이유로 정리해고를 하지 않겠다는 2007년의 노조와의 약속도 어겼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대화를 피한 채 지난해 12월 20일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후 8개월 가까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더구나 지난해 12월 15일 사측이 400명에 대한 정리해고계획을 노조에 통보한 직후 170억원대의 주주배당을 하는 등 사측은 노조의 불신을 자초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갈등이 생겼을 때 대화에 응하지 않은 사측이 사태 악화의 책임이 크다"며 "경영자가 당당하게 나서지 않으면 순간적인 위기는 모면할 수 있지만 오히려 문제를 키운다는 사실을 이 사태가 보여준다"고 말했다.
해고자 위한 사회안전망 만들어야
한진중공업 사태를 계기로 정리해고에 관한 사회적 합의기준을 만들고, 해고자에 대한 실질적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정리해고를 허용하는 기준은 현재도 존재하지만 객관적으로 해당여부를 가리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긴박성, 해고회피노력, 합리적인 대상선정, 노조와의 협의 등 경영상 해고를 인정하는 4가지 요건을 법원도 정확히 따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무조건 정리해고를 막기보다 재취업 통로를 여는데 기업에 책임을 지울 필요가 있다. 경영상 정리해고를 하려면 기업들이 해고자들의 전직ㆍ창업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아웃플레이스먼트(outplacement)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독일의 제도가 좋은 사례다. 이정호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은 "쌍용차의 경우도 해고자 지원책이라고는 20~30년간 기름 때 묻히며 살아온 이들에게 자영업으로 전환하면 몇천만원을 대부해주겠다는 정도였다"며 "평생 익혀온 기술을 활용한 재취업이 가능해져야 한진중공업 같은 절박한 투쟁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도 "사용자들은 법에만 의존하지 말고 노동자들이 필요한 재교육을 시켜준 뒤 정리해고를 시행하는 설득과 조정의 노력을 먼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계도 정리해고가 불가피한 시장의 상황을 인정하고,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사회안전망 확보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노동계가 주장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구호는 '정리해고자와 비정규직이 억울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는 구호로 바뀌어야한다"며 "정리해고 회피절차를 명확히 하고, 해고자들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식으로 제도정비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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