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9일 미국 공영라디오 방송인 NPR과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 쇄신파 의원 25명이 보낸 '공개 사과 요구 서한'에 대해 "답변을 안 하는 것으로 답변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듣기에 따라서는 거부감이나 불쾌함을 표출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런 점을 염려한 듯 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고,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은 뭐라고 말하기보다는 생각을 더 해야 하는 시기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인식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의원들이 요구한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도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으로서 취할 태도는 아니다. 국면이 어렵다고 해서, 깊은 성찰도 없이 허겁지겁 입장을 밝히는 것은 오히려 더 무책임할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충분히 판단해 국민 앞에 제시하는 게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도 이날 "정부와 청와대가 변할 일에 대해 대통령과 만나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홍 대표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이 대통령은 보궐선거 현장에서 민심을 직접 접한 집권당 대표를 우선적으로 만나야 할 것이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같은 말이라도 이 대통령은 "침묵으로 답한다"는 식보다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더욱이 서울시장 보선 패배 후 이루어진 첫 인사가 보은 논란, 측근 회전문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이번 발언이 그런 인사논란과 겹쳐지면서 진정성보다는 무감각, 오만함으로 국민에 투영될 수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여러 의견을 듣는다는 이유로 이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지면, 국면을 회피하려고만 한다는 비난을 초래할 수 있다.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국정기조나 정책 변화라는 큰 틀에서부터 내곡동 사저 의혹, 인사 문제 등 구체적 현안에 이르기까지 진솔하게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사과도 해야 한다. 그게 임기 마지막 1년을 탄탄하고 명예롭게 이끌어 갈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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