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지방대의 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학생이 임대아파트에서 뛰어 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꿈은 검사였다. 그러나 작은 세탁소를 경영하며 한 달 100만원 남짓 되는 부모의 수입으로는 3년에 1억원 정도의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법대에서 과수석에 학기마다 장학금을 받았지만 로스쿨의 비싼 학비는 검사가 되고 싶어했던 소박한 법학도의 꿈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출발선부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극명하게 가르는 사법 양극화, 로스쿨이 그 대표적 제도임을 우리는 이제 실감하고 있다.
사설 학원이 돼 버린 현실
현재 흑자를 내는 로스쿨은 기부금으로 재정을 매운 서울대와 강원대뿐이다. 나머지 로스쿨은 비싼 등록금을 받으면서도 대부분 적자상태다. 운영비를 자체적으로 충당하지 못해 소속 대학의 재정을 끌어다 쓴다. 대학 총정원의 10%도 되지 않는 로스쿨 학생들을 위해 학부생의 등록금을 전입해 쓰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학구조개혁 조치로 부실 대학 2곳을 강제 폐쇄하기로 했지만 이런 기준이라면 대부분의 로스쿨은 퇴출 수준이다.
우려했던 대로 '로스쿨의 학원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로스쿨 학생들은 판ㆍ검사 임용이나 대형 로펌 취업에 도움이 되는 상거래법과 형사소송법, 민법, 회사법 강의에는 몰리지만 국제법과 지방자치법처럼 취업과 상관이 없는 과목은 외면하고 있다. 서울대 로스쿨은 작년 2학기 폐강된 과목이 7개였지만 올 봄 13개 과목이 수강인원 미달로 폐쇄됐다. 원광대와 충북대, 인하대, 중앙대도 폐강되는 강의가 대폭 늘어났다. 폐강 과목 중에는 '법조윤리'과 '국제경제·통상법'도 들어 있다. 법조인의 윤리의식은 학생 때부터 가다듬어야 하지만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자유경쟁 체제에서 국제거래와 국제금융 분야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며 로스쿨이 도입됐지만 그런 로스쿨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다양한 전문분야에서 실력 있는 법조인을 양성하겠다는 로스쿨은 '무늬만 로스쿨'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로스쿨 졸업생의 취업현황은 암울하다. 내년 1월 변호사시험에서 입학정원 2,000명 중 75%인 1,500명 정도의 합격자가 나올 전망이지만 이 가운데 국내 10대 로펌에 채용된 인원은 120여명에 불과하다. 지방대 로스쿨 출신은 단 3명뿐이다. 지방 법조의 균형발전을 위해 설립된 지방 로스쿨의 도입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법원의 로클럭이나 검사로 임용되거나 합동법률사무소 등에 채용될 인원을 다 합쳐도 600명이 넘지 않는다.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더라도 당장 900명 가량이 실업자가 될 위기다.
일본의 로스쿨도 현재 경영난에 봉착하여 통폐합되고 있다. 비싼 학비를 들여 공부해 봤자 사법시험 합격률이 높지 않고 변호사가 되어도 취업할 곳이 없다. 청년백수가 점차 증가하면서 로스쿨 지원자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특히 사법시험 합격자를 한 명도 내지 못하는 로스쿨도 여러 곳 있다.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로스쿨이 속출하고 있다. 경영 악화와 지원자 급감은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로스쿨도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참담한 전철 밟지 말아야
우리 로스쿨의 위기는 로스쿨이 현재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지만 누구도 이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학비가 없어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들을 방치하고 있다. 국제경쟁력을 갖춘 법조인 양성은 요원하다. 정부와 대학은 변호사 대량배출에만 신경 쓸 뿐 졸업 후의 일자리 만들기에는 별 관심이 없다. 로스쿨에서 학문이 외면당하고 있지만 어느 대학도 언급을 회피한다.
로스쿨 졸업생을 처음 배출하면서부터 로스쿨이 이 지경이 된다면 우리나라에 로스쿨이 과연 필요한 제도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한다.
하창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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